최근 자살도 있었고 근래 이래저래 자주 회자되는 문제인데, 제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적나라한 실체로서의 '학교폭력'을 경험했던건 중학교때였습니다. 운이 좋아서(?)인지 정작 고교에서는 그런 것 못봤습니다. 범생이들만 다니는 엘리트 학교였던게 아니라, 철저하게 그룹이 나눠져서 아예 각자의 세계에서 놀더라구요. 참고로 약간 낙후된 동네에 있는, 학력수준이나 여건이 매우 열악한, 무서운 소문이 무성한 그런 학교였는데.. 막상 가보니까 너무나 평화로워서 참 행복했던...

 

나중에 나이먹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좀 비슷하더라구요. 중학교때 애들이 가장 거칠었다... 어쩌면 제가 좀 특이한 케이스였는지 모릅니다. 제가 들어간 중학교는 당대에 떠오르는 신흥 막장학교였거든요. 원래 인근 남학교가 명성을 떨쳤는데 바톤터치 하는것도 아니고 그 뒤를 이어 한층 더 악랄하게 망가졌던... 선생들이 '좋은 학교였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상태가 안좋은 애들로 가득차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던게 기억나네요. 근데 그 인간들도 선생 자격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학생지도가 전혀 안되는 무능한 놈들이었거든요. 스승으로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 항상 술냄새가 나고 코가 발갛던 체육선생도 기억나네요.

 

엄밀히 말하면 전 학교폭력 피해자는 아니었습니다. 제 경험따위는 진짜 당했던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을 일이죠. 고교때처럼 완전히 그룹이 갈려서 서로 침범하지 않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대한민국의 어느 학급에서나 그렇듯 폭력의 타겟이 되는건 어중간한 친구들이죠. 아주 친구가 많고 잘 노는것도 아닌데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도 아닌... 전 대체로 모범생; 축에 든 편이라 왕따를 당하거나 두들겨 맞거나 돈을 뺏기거나 하는 '흔한' 괴롭힘까진 안당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초등학교 친구들 이젠 이름은 커녕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딱 한놈의 이름과 얼굴, 걸음걸이와 말투 목소리까지 너무나 생생합니다. 그놈이 저를 번뇌하게 했던 그 놈이거든요. 음.. 그때 우리 학교에도 '일진'이라는 용어가 통용됐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어쨌든 '노는 애들'로 통칭되는, 싸움 잘한다고 거들먹거리는 그룹이 있었고, '그놈'도 그 그룹 안에서 서열안에 드는 녀석이었죠.

 

저는 그 시절을 참담한 굴욕과 고통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그놈은 아예 저란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원래 그래요. 괴롭힌 아이가 자살을 해도 죄책감을 못느끼는 판에, '아니 내가 널 언제 괴롭혔다는거니?'라고 순진한 얼굴로 반문할지도 모르죠. 그놈이 저한테 가했던 괴롭힘이란 것도 사실 그냥 제3자가 보기엔 별 것 아닌 '장난'으로 치부되어도 이상할게 없을거에요. 그걸 한마디로 표현하면 '귀찮게 지분거림' 이니까요

 

'귀찮게 지분거리는' 것 그 자체보다 저를 반쯤 정신병 상태로 몰고갔던건 이런 거였습니다. 전 아직도 이게 생생한데, 그 놈이 늘 하듯이 저한테 귀찮게 지분거림을 시전하다가 지 주먹을 내보이면서 이러더군요. '너는 내가 주먹 한방에 죽일수 있다' 이게 뭔 흑화된 카르자크도 아니고 중2병돋는 소리냐 하실지 모르겠는데, 아주 진지했습니다.

 

그 시절 '노는 애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겁니다. 자기들 그룹에 속하지 않는 '양민'들은 같은 나이의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아니라, 마음만 내키면 마음껏 희롱해도 찍소리 못하고 심지어 가볍게 '죽여버릴 수도 있는'  벌레같은 존재였던 겁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로 몰고가도 아무 죄의식을 못느끼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고 항변하는 파렴치함은 사실 파렴치함이 아닙니다. 아예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대상에게 무슨 양심의 거리낌이 있나요. 잠자리채 들고 곤충을 잡아서 손가락으로 가지고 노는 거랑 똑같아요.

 

그때 그 학교는 학교라기보단 동물들을 가둬놓은 우리에 가까웠습니다. 완전한 동물상태죠. 믿어지시나요? 싸움을 잘하냐 못하냐로 '계급'도 아니고 '먹이사슬'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만들어지는겁니다. 거기에는 그 누구도 아무도 개입하지 않고 또 못해요. 말했듯 선생들은 하루에도 서너번씩 폭력사건이(사건이라고 할수도 없죠 왜냐면 애들 선에서 끝나버리니까 항상!) 터져도 못본척 하는 방관자들이었고, 무력하기로는 부모들은 더하니까요. '어중간한 아이들' 중에 '그냥 거슬려서' 찍힌 친구들은 구타당하고 금품을 갈취당하고 온갖 성적 추행과 희롱에 농락당했습니다. 저는 뭐했냐구요? 부디 그놈의 괴롭힘이 '지분거리는' 정도에서 유지되고, 저기서 짓밟히고 있는 불쌍한 애들 사이에 내가 끼지 않길 기도하며 숨죽이고 눈치보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10년 세월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진심으로 자살을 생각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하루 하루가 숨이 막혔어요. 아예 안전한 그룹쪽에 속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속으로는 두려워했을지 몰라도 외형상 평화를 누리고 있었죠. 저는 완전히 타겟에서 벗어난것도 아니면서 대놓고 짓밟히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은, 모호한 경계 어딘가에 걸쳐져 있었기 때문에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중학생이 학교에서 다녀와 집에 오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게...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괴롭힘 그 자체나 이 괴롭힘의 수위가 발전하리라는 공포보다 절 더 미칠 지경으로 몰고갔던 것은, 그냥 그 환경 자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습죠. 중학생따위가 또래보다 완력이 세봐야, 주먹과 발길질이 날렵해봐야 얼마나 더 낫겠어요? 그 '노는 아이들' 그룹 안에 정식으로 무도를 연마한 애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싸우는 꼴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는 벌벌 떨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애들 개싸움입니다. 팔다리가 막 따로노는.. 만화책 짱에 나오는 그런 장면은 허구일 뿐인거죠. 하지만 그때는 정말 명백한 공포였어요. 그리고 저는 그 유치하고 허술한 공포에 완벽하게 굴복해서 봉건영주의 처분을 기다리는 농노마냥 숨죽이며 살았고, '이런 삶' 3년이 정말 끔찍했습니다. 똑같이 열네살 열다섯살 밖에 안먹은 꼬마들일 뿐인데, 저놈은 나같은건 마음 내키면 마음껏 짓밟을 수 있는 지배자이고 나는 저놈의 눈치만 보는 노예인 이런 삶.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던 탓이죠. 그걸 깨뜨릴 용기도 없는주제에 자존심만 세서였는지도 모르고...

 

근데 저를 한층 더 비참하고 열받게 했던건, 저랑 마찬가지의 처지인 '양민'들의 태도였습니다. 그 '노는 아이들' 그룹의 일원이 어딘가에서 누구랑 싸워서 어떻게 했다는 둥, 어디 중학교의 어느 여자애를 따먹었다는 둥 하는 무용담을 상기된 얼굴로 전파하며 '우와~'하며 경외심 가득한 목소리로 떠드는 그 꼴들... 정말 터무니없는 이유로 지배자와 노예가 정해져있는 이 상태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수용하고 오히려 그 '지배자'들에게 아양을 떨어 자기도 그룹에 끼어볼까 기웃거리기나 하는..

 

제가 너무 예민한 탓이겠죠. 그렇다고 해두죠 뭐... 만약 제가 진짜로 뉴스에 나오는 피해자들처럼 당했다면 아마 주저없이 자살을 했거나 '그 놈'을 찔러 죽이고 십대에 살인전과자가 됐을거에요. '귀찮은 지분거림' 정도의 괴롭힘을 1년 당하는 것 정도로도 그 시절은 제게 뼈에 칼로 새긴듯한 상처로 남아있으니까요.

 

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중학교 시절에 겪은 그 '동물우리' 의 원인이 뭘까요? 저는 이 게시판에 차마 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악랄한 학급 내 범죄들을 여러 건 봤습니다. 그건 형사처벌 당할 수위에요. 하지만 바른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맨나 공염불 외듯 하는 얘기인 '다 어른들의 잘못이다' '사회의 탓이다'라는 것은, 적어도 제가 겪은 범위 내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흔한 편견과는 달리 저를 괴롭혔던 그 놈을 비롯해서 '노는 아이들' 그룹에 껴있는 녀석들은 단 한명도 결손가정의 자녀도 아니었고, 특별히 빈곤하거나 사회적 소외계층에서 어렵게 자란 아이들도 아니었습니다. 그중에는 번듯한 기업의 간부의 자식도 있었고 심지어 교사의 자식도 있었습니다. 저를 괴롭힌 놈은 지 기분이 좋으면 쓸데없는 얘길 주절댈때도 있었는데, 그놈의 가정은 부모랑 같이 텔레비젼 코미디 프로를 보며 웃고 할머니가 생일선물을 사주는 평범한 가정이었어요.

 

'동물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수백 수천개가 있을테죠. 그 안에서 누군가는 벌레가 되고 그 벌레들을 소수의 몇명이 마음껏 가지고 놉니다. 가끔 '놀이'가 너무 지나치면 벌레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이 지경이 되어야 신문과 방송에서는 호들갑을 떨며 보도를 하죠. 그건 호들갑떨며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하고 떠들 것이 못됩니다. 죽냐 마냐의 마지막 문턱에서 오락가락하는 뒈지기 직전의 벌레들은 너무나 많거든요.

 

그래서 하고싶은 얘기가 뭐냐구요? 그런건 없어요. 저는 그저 그런 악몽같은 시간을 보내고 '탈출'한 것만으로도 기쁘거든요. 정말 고등학교 올라가서 너무 행복했어요. 거기에서도 여전히 거들먹거리는 양아치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그치들은 자기들의 바운더리 안에서 놀았거든요. 어리버리하고 왠지 마음에 안들고, 별로 말섞기 싫은 놈이 있다? 그냥 같이 안놀면 그만인거에요. 굳이 들러붙어서 때리거나 돈을 뜯지는 않는거고, 또 그럴 생각들을 애초에 하지도 않는 정직한(?) 양아치들이었죠.

 

대한민국에서 중고교 나온 사람으로서 학교폭력 문제에 한마디 해봐라, 라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딱 몇개는 말할 수 있을거 같아요. 첫째, 선생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무의미하며 심지어 때로는 유해하기까지 하다. 둘째, 학교폭력 가해자의 범죄행태의 원인을 습관적으로 가정환경이나 성장과정 등으로 돌리는 못된 버르장머리는 눈 뜨고 못봐주겠다, 왜냐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이 두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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