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봉준호급 정도는 되어줄 신인 감독이 나타났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인간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좀 비슷할 것 같고, 그걸 영화 안에 녹여내는 방식도 비슷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 슬래셔 맞던데요! 별로 끔찍하지 않고, 오히려 통쾌하다고 말해주신 분들은 매우 튼튼한 신경을 가지고 계신지, 저는 아주 죽는 줄 알았어요. 본의 아니게 주변 분들에게 민폐도 많이 끼쳤을 듯 해요. 소리를 죽이려고 노력을 했지만, 비명이 절로 터지는 걸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감독 및 출연진들과의 대화 시간에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감독이 "덕담 위주로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차마 묻지 못했던 게 있는데, 듀게 분들과 질문과 대답을 나눠보고 싶어요.

 

첫째로, 연희의 아버지(양 아버지)와의 관계인데요, 연희는 아버지와의 성적인 관계에 적극적인 것처럼 그려집니다. 고작 10살짜리 여자애가 성적인 자발성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마을의 최강자에게 잘보여서 편하게 지내자는 본능적인 계산인 것으로 생각은 되는데, 아무래도 보고 있기 불편하더군요. 연희가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착취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으로 그린다면 좀더 안전했을텐데, 감독이 굳이 연희를 그런 식으로 그려낸 것을 보고 독하다고 생각했어요. 감독 나름의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의 단초가 연희한테서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둘째로, 이건 꼭 이 영화에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닌데요. 어느 사이엔가, 우리 영화에서 농촌을 그리는 방식이 좀 정형화되고 있는 느낌이 있어요. 무식하고, 염치없고, 본능적 충동과 욕망에 모티베이트되고, 그러다 보니 잔혹하고 폭력적이고요. 지금 생각나기로는, 시실리 2km 가 그런 면에서 참신했고요, 이게 반복되면서 좀 기괴하게 정형화되는 느낌이예요.  구타유발자들, 극락도 살인 사건(이건 인위적인 것이었지만요), 차우 등이 이런 식으로 농촌(어촌, 산촌) 공동체를 그렸던 것 같습니다.  농촌 공동체의 전통적 윤리가 해체되었는데, 그렇다고 그걸 대체할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윤리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그려지는 것이 처음에는 그럴 듯 하다고 느꼈는데,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다보니, 이것 역시 하나의 편견, 차별적 시선, 시선의 폭력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무리 전원일기 같은 농총이 판타지라고 하지만, 농촌(산촌, 어촌)이 정말로 저렇게 기괴할 리는 없다 싶고요.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안개 마을" 로 거슬러 올라가던데요, 저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안개 마을"은 여전히 전통적인 윤리와 가치가 존중받고 위선이 지배하는 공동체였고요, 요즘 영화에 보이는 농촌은 "위선"도 사라진 그런 곳이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영화는 한 맺힌 여성이 "괴물"이 되고, 결국은 사라진다는 전형적 한국적 호러의 틀을 가지고 있더군요. 지금의 결말이 너무나 슬프면서 감동을 주긴 했지만, 한 맺힌 여성을 죽게 하지 말고, 어디선가 새롭게 살도록 해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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