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8 17:24
1.
박정희의 긴급조치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좋아지자, 본인이 받은 형사처벌이 부당하다며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대법원은 "박정희의 긴급조치는 위헌이다. 위헌인 긴급조치가 적용된 형사처벌은 취소임. 무죄." 라고 선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긴급조치는 법률이 아니니까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대법원이 판단한다."고 한 방을 날립니다. (헌법에 법률의 위헌여부는 헌재가, 그 하위의 규칙 등의 위헌여부는 대법원이 판단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런데 그 사건을 헌법재판소에도 가져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얼마 전 "박정희의 긴급조치는 위헌이다." 라고 선언합니다. 긴급조치 자체가 나가리 되었으니 이제 이 사람뿐만 아니라 당시 긴급조치로 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헌재 결정만 앞세우면 그냥 줄줄이 재심에서 무죄가 가능합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는 사실상 법률이다. 위헌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뭐라 할 자격이 없고 우리 헌법재판소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맞받았습니다.
서로 결론은 같았지만, 자기 결론만이 유효하다고 우기는 상황입니다. 이제 많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헌재 결정문을 들고 법원으로 갈텐데, 이때 법원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결론은 공유하고 있으니 재심을 안받아주진 않겠지만, 그 과정에서 헌재 결정문 따윈 효력도 없으니 내다버리라고 또 속을 긁을지...
2.
그나마 위 사례는 두 기관이 싸워가며 피해자를 서로 구제해주려고 한 경우입니다. 그렇지 않은 아름답지 않은 사례가 오늘 나왔네요.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73682&kind=AA&page=1
얘기가 복잡한데, 대강 요약하자면 기업들이 법에 의해 세금을 맞았습니다. 취소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졌습니다. 그러자 헌재로 달려가 법률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는데, 헌재는 "그 세법을 이 기업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기업들은 신이 나서 헌재 결정문을 들고 다시 대법원에 왔습니다. "헌재가 이런 법 나한테 적용하면 위헌이래요. 세금 돌려줘요."
그러나 대법원 왈. "헌재는 법 자체가 위헌이다 아니다만 말할 수 있다. 요리조리 어떻게 해석할까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대법원이 끝판왕이다. 우리가 아니라면 아닌거임. 헌재 꺼져."
어? 이거 뭐지? 기껏 헌재까지 가서 위헌 결정을 받아왔는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이 기업들의 선택은 아마 "대법원이 헌재 꺼지라고 했어요" 라고 헌재에 징징거리는 거고, 헌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법원 이 색히! 대법원 판결이 위헌이라서 취소!" 라고 하는 거겠죠. 근데 그걸 들고 다시 대법원에 와서 "헌재 꺼지라는 판결 취소래요. 돈 줘요." 하면? 대법원이야 뭐 또 "아 꺼지라니까!" 하겠죠. ㅡㅡ;;
대법원과 헌재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싸움. 이렇게 되면 최후의 승자는..... 변호사?? ㅡㅡ;;
한편으로는 옛날처럼 화끈하게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청와대에 불려가서 한 소리 듣고 그 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쪽이 깨갱 하는 상황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도 듭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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