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아이조를 보았습니다. 별로네요. 별로에요. 같이 본 남자친구는 즐겁게 옆에서 흥분하면서 소리내며 보더군요. 이렇게 대놓고 말도 안 되는 영화 컨셉 잡으니까 재미있지 않아?! 이러면서. 귀엽게 구는 남친 볼 수 있었던 거 빼고 영화 자체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머리 비우고 영상만 즐긴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코멘트 할 말도 없군요. 차라리 김보성의 영웅이나 볼 걸 그랬습니다. 김보성의 시 읊는 거 보고 싶었거든요.

 

 

2.

 

 

 

    요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스티븐 컨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이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나 그 생각의 끝에는 결국 답이란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듀나게시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요.  듀나게시판에 처음 들어오기 시작했던 그 어린 시절로부터 이미 많이 흘러버린 지금, 그 시간이 나를 얼마만큼 변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네요. 칸트는 인간 이성의 숙명이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지요. 그게 바로 철학의 핵심이겠죠.

    우리에게 시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흘러가고 있고, 멈출 수 없습니다만 결국 우리는 리듬을 타듯 시간을 타는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상황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요. 작금의 인간들이 우울한 이유는 어쩌면 시간도, 공간도, 삶도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옛날 사람들이 차라리 많이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지 몰랐다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제한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지 알고 있습니다. 불행은 어쩌면 앎에서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만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눈 역시 앎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 지식을 알게 하는 과실을 아담과 이브가 따먹음으로써 모든 죄가 시작되었다는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는 보편적인 무엇입니다. 어떻게 소비할지는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입니다. 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인간들을 더 빠르게 움직이게 하며, 우리 자신이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인간을 우울하게 만들며 때로는 무기력을 느끼게까지 합니다만, 여전히 앎이란 것은 그것을 능가하게 해줄 더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매트릭스를 보면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선택을 하라고 하죠. 우울한 현실을 직시하며 살지, 아니면 밝은 환상 속에서 모든 걸 잊으며 살지. 저에게는 우울한 현실을 직시하며 그곳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실로 강한 진리이며, 가장 시간을 성스럽게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3.

 

 

    요즘에 학교 수업시간에 김기덕의 나쁜 남자를 보고 있습니다. 김기덕의 나쁜 남자는 오프닝부터 김기덕 색깔이 확 느껴지죠.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보다 중간에 말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는 김기덕의 작품들을 사랑합니다만, 그 영화는  참을 수 없는 어떤 불쾌함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그러나 사람들이랑 같이 보니 외려 더 용기가 난 건지는 모르겠으나 옛날에 느껴졌던 불편함이 거세된 상태입니다. 제 뒷자리에 앉은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김기덕을 생각하는지 수근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고요.

    가만히 앉아 있다 여자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하지요. 그 거친 폭력성, 일방적인 욕망을 그려내는 김기덕의 방식을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를 좋아합니다. 제가 김기덕을 좋아하는 이유는 김기덕이 제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 같은 작품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욕망과 폭력들을 마치 무조건 진솔하게 그려내야만 한다는 일념에 빠진 사람처럼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뒤에 있던 학생들이 수근거리던, "너무 극단적이야. 김기덕 영화잖아. 아 그래서...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나? 더러워." 라는 말이 제게는, 물론 그들의 생각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겠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반항심을 일어나게 한 단초였던 것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진솔한 사람입니다. 그 방식이 투박하고 거칠다 해서 그러한 비난을 들을만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를 옹호하는 것일까요? 저는 언젠가 김기덕과 프랑스 영화감독 카트린 브레야의 유사성을 지적한 적이 있었지요. 그들 둘은 똑같이 인간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검고 어둡고 더럽다고 손가락질 받는 욕망들과 욕심들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그 상상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악바리같이 들이대지요. 사람들은 그러한 정신에 학을 떼는 겁니다. 모두들 거부하는 더럽고 추한 진상을 그들이 까발리니까 증오하고 욕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더러움을 보지 않고서는, 외면하고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김기덕을 미워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이해합니다. 중간에 영화 보다 끌 정도였으니 제가 이해를 못할 건 또 무엇일까요? 저는 그러나 김기덕의 이러한 솔직한 개방성에서부터 자신을 맹렬하게 쫓아서 대중 앞에 고해성사 시키려는 그만의 가학적인 방향성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가 나쁜 남자에서 보여주는 것은 남성 시선입니다만, 동시에 매우 통렬하게 자기비판적인 남성 시선이었습니다, 제게는.

 

 

 

 

4.

 

 

 

    저는 아빠 어디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귀엽습니다만, 물론, 원래 아이를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나 혼자 살 때는 제 취향이네요. 여러 가지 좋은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혼자 사는 것을 보면 저는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까지나 독립하지 못한 것처럼, 다 큰 어린아이처럼 굴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도 사회적으로 독립이 어려운 대한민국 구조 때문인 걸까요, 아니면 그냥 무능한 제 탓인 걸까요?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다보니 저도 좀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적어도 제 친구들과 술잔을 하루 밤 내내 기울일만한 저만의 아지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꾸준히 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인생이 설령 궁상 맞아 보일지언정 저만의 사람들을 자유롭게 불러 술파티도 하고, 애인과 하루종일 우리가 돈 주고도 보지 못할 수많은 vod와 만화들, 영화들을 볼 생각을 하면 지금도 두근거린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먼 상상일 뿐이겠지요. 아직도 제 처지에는 맞지 않습니다.

    나 혼자 살 때는 참 재미있습니다. 저는 그런데 노홍철 사는 것도 좀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데프콘과 더불어 혼자 사는 걸 가장 잘 즐기는 스타일이던데. 김태원은 보면 볼수록 아줌마 스타일이군요. 이성재는 매력이 넘치고. 서민국한테는 관심이 크게 없으므로 넘어가겠습니다.

 

 

 

5.

 

 

 

    한때 트위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글이 주는 빈곤들과 지나치게 일회적인 양상이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곧 접었습니다. 트위터를 소화할 시간에 더 긴 글을 읽고 더 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위터를 잘 조절해서 쓰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였습니다. 트위터를 잘 조절하기에는 그만큼의 내공이나 깊이도 없었습니다. 결국 공허한 말들로만 끝난다면,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이 굳이 트위터만은 아닙니다. 저는 듀나게시판에도 곧잘 짧은 글들을 많이 썼었고, 길이가 길다 하더라도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많이 내뱉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이, 지금에 와서는 좀 후회한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일까요? 지금 저는 그저 듀나게시판에 영화이야기를 많이 불어넣을 수 있는 한 사용자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긴 글, 여기서 긴 글이라 함은 내용면에서도 알차고 길이도 긴 글을 말한 답니다,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의 글도 영양가 없는 짧은 글이었군요. 그러나 간만에 게시판에 글을 한 번 올려보고 싶은 욕망이 든 하루였습니다.

 

    이만 저는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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