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에서 별로였던 것들

2013.04.03 22:54

블라디 조회 수:2386

지슬의 수상경력과 작금의 평가에 비해 당혹스러울 만큼 저는 영화를 재미없게 봤어요. 특히 몇가지 요소들을 꼽자면...

학살의 비극적 순간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슬로우모션과 태극기 휘날리며 풍의 장중한 오케스트라 선율은 개인적으로 .. 감독의 독자적인 시각보다는 흥행영화 풍의 연출을 흉내낸, 그것도 훨씬 못미치는 방식으로 모사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목격한 유일한 증언자이자, 뚫어질 듯한 시선을 쏘는 통통한 소년(?)군인..  처음엔 감독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의미 있는 역할로 보였으나 고개만 계속 들며 보이지도 않는 오묘한 시선을 쏘을 뿐 영화 끝까지 그 캐릭터의 의미가 확장되거나 부연되지 않고, 결국 존재 이유 없는 역할에 머문것 같습니다. 왠지 신비한 증언자 캐릭터가 있어야 할것 같아서 영화에 들어간 느낌..

허무하게 죽은 착한 서울말 쓰는 군인과 순박한 경상도 출신 군인의 우정, 이를 불용하는 학살의 화신일뿐인 상관, 무능하고 미친 상관.. 군인들 캐릭터도 너무 익숙한 설정으로 다가왔습니다. 더 문제는 이런 익숙함이라도 각 캐릭터의 입체성과 갈등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주면 좋을텐데.. 그런것 없이 그냥 일관되게 평면적이고, 표층적이었어요. 이건 제주도민들의 캐릭터도 매한가지.

 

마치 선과 악은 서로 넘나들 수 없게 이분되어 있고, 그 어떤 설명과 부연과 나름의 정당화 없이 그냥 감독의 권한으로(역사의 권위로?) 그런 이분법은 정해져있으며 이는 영화 내내 변하지 않는구나 싶더군요. 물론 역사적 사건에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부여할 수 없는 건 아니겠죠. 그런데 선과 악의 속성을 파헤치지 않고, 그냥 그런게 있고 이 둘은 서로 대비된다는 데서 논의가 그치는 것은 단순하고 피상적이라 생각합니다.

 

또 가장 최고로 악의 화신인 미국이 영화 앞과 뒤에서 자막으로만 그 존재감이 희미하게 언급될뿐 정작 영화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안해서.. 당황스러웠어요.

개인적으로.. 저에게 지슬은 익숙한 설정의 번복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피상적 접근으로 이 사건이 이토록 비극적이었고, 이토록 선악이 분명했다는 것임을 가르침 받는데 그친 영화였어요. 인간성이나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고찰을 전하기보다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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