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느끼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입니다. 저는 지정학적으로 어떤 토지의 범위 내의 사람으로 소속되어 있고, 야구 구단도 하나 배정되어 있습니다. 또 이렇게 듀게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곳과 전혀 무관하지만) 일단은 넥센을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것에 소속되어 있다는 그런 마음의 뜨거움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없어요. 월드컵이나 올림픽, 애국심이라거나 애향심, 애교심 등등 자신의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고 그것이 정서에 밀접하게 영향을 끼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행동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어림짐작으로 맞춰서 행동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두 가지 정도 있는데, 하나는 소속 집단 바깥에서 소속 집단을 강제하는거죠. 여자라거나, 30대라거나, 저소득층이라거나, 종교라거나, 동아시아인이라거나 이런 식으로 외부에서 집단을 부르면 그 부름에 응답할 수 밖에 없어요. 어떠한 게시판에서 활동 할 때는 그 게시판 유저들을 부르면 거기에 속하게 되구요. 좋든 싫든 자기가 속하지 않은 상황에서 속한 것을 유한한 집단으로 만들면, 그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묶고 불러낼 수 있는 거에요. 그런 묶음이 쓸모 있을 때도 많고 그렇습니다만 저는 소속감을 잘 못 느껴서요. 두 번째로는 내부 결속인데, 이번에는 안에서 밖을 부르는거죠. 그 집단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 공표하거나 말하는 상황이 되는데 그럴 때도 제가 속해있는 영역에서 제가 권한 행사를 안 했어도 퉁치고 함께 묶여서 한 목소리처럼 들리게 되죠. 전 이런 상황들이 매우 귀찮고 깝깝합니다. 제가 제가 속한 모든 것에 대해서 저에게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저지를 할 수 있다면 초인이겠죠.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듀게를 묶어 부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왜 그랬는지, 어떤 연유 때문에 검색하게 되었었는데, '듀게'로 구글에다 검색을 하게 되었어요. 아, 그 지난번에 자기를 지칭할 때 '나'라고 해야되는지 '저'라고 해야되는지 다퉜을 때의 일인데, 듀나님이 듀게에 대해 별로라고 했고 그 때 듀게에서 활동하지 않는 두 사람이 트위터에서 듀나님과 함께 대화하면서 듀게를 까더라구요. 그래서 외부에서 생각하는 듀게는 어떤 식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죠. 블로그 등지의 글도 나오고, (게시판을 위주로 한) 커뮤니티 등지의 글도 나오더군요. 그런데 그런저런 글을 읽다가 꽤 이해하기 힘든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아이디나 게시판 이름 같은 걸 쓰는데 별 저항감은 안 가지지만 딱히 특정인에게 악감정은 없기 때문에 명확한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커뮤니티 한 개만 활동하시는 분은 별로 없을 꺼에요. 두 개나, 세 개, 많으면 여러 개에서 각각의 글을 쓰겠죠. 그런데 그럴 때 소속감을 어떤 특정한 커뮤니티에 몰아서 가지기도 하나요? 그렇게 되면 다른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은 하면서도, 그 커뮤니티들을 뒷담화하면서 자신의 즐거움을 풀 수 있겠더라구요. 지난번에 카카오스토리 뒷담화를 하시는 분께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두 개의 커뮤니티를 가입하고 두 쪽에서 뒷담화를 하라고는 했지만, 진짜 그런게 가능할지는 몰랐어요. 이건 두 쪽에서 동시에 뒷담화를 하는게 아니지만요. 그렇다면 한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나머지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소속감이란게 없겠구나 싶겠더군요. 소속감이 없는 커뮤니티 생활이란 마치 영화의 관객 위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관객도 아니고, 영화 내에 존재하면서도 영화의 서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엿보는 사람의 위치겠죠. 예를 들어, 재난 영화에서 전혀 재난에 휩쓸릴 위험이 없고, 슬래셔 무비에서 절대 살인마에게 잡혀 죽을 일도 없으면서, 그 서사 속에서 재난 당하는 사람이나 잡혀 죽는 사람 바로 곁에서 그 감정과 온도, 소리, 질감 그 무엇이든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거겠죠. 제 생각에는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방법 중에 정말 최고의 방법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 영화나 소설에서 우리가 느끼고 있지만, 그 때는 외부자일 뿐이죠.)


저도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만, 소속감이란게 그다지 큰 효용이 없다는 느낌만 들어요. 큰 다툼에는 꼭 소소감이 문제거든요. 제가 누군가와 다투게 될 때도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하잘데없는 소속감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소속감의 제 아킬레스건은 종교이죠. 언젠가 시원하게 뽑아버리고 생각도 안 할꺼에요.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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