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아이패드 패키지에 홀려 몇달째 전화영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해외 여행이었는데 한창 다른 나라 얘기하다가 선생님이 그럼 한국에서 제일 가볼만한 곳은 어디냐? 라고 물었습니다.

다다음주말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있으니 당연히 제주도! 라고 외쳤어야 정상인 것 같은데 전 뜬금 없이 UN 묘지라고 답했어요.

이게 주구장창 북한과의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는 요즘의 언론 때문인지 제가 부산 말고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본능적으로 부산 한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내팽개친지 몇년 된 전공자로서의 피가 끓는 건지 뭔진 몰라도 여튼 그랬어요.


심지어 영어로 공동묘지가 뭔지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내가 한국말로는 당연히 아는데 영어로는 모르겠어요! 이러면서 UN Graveyard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선생님이 구글링 해서 "UN 기념 공원? UN Memorial cemetery?"라고 하길래 격하게 긍정하면서 부산에 있는 한국 전쟁 때 죽은 외국 군인들 묘지다-라고 했어요.

거기 가면 그 중 제일 어린 병사의 이름을 딴 작은 개울(stream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사실 그냥 보면 배수로)이 있는데 그 사람이 18살인가 19살인가

여튼 끔찍하게 어린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어서 그걸 보고 '아니 얘가 도대체 왜 이 나이에 남의 나라 전쟁에 와서 죽은 거냐!'라고 생각했단 얘기도 하고요.


사실 늘 부산에 살았지만 어째서인지 학교에서 단 한번도 단체 견학을 가질 않았고, 처음 UN 묘지에 간 게 2009년도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창 연애 중이었고,격주로 부산에 내려오는 애인을 맞이하여 도대체 어디로 놀러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다 아 UN 묘지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찾던 중에 안에서 도시락 먹으면 안 된다는 얘기에 풀이 죽었던 아주 보잘 것 없는 철딱서니를 지닌 인간이었죠.

여튼 2009년 여름에 생전 처음으로 UN 묘지에 갔고, 이름은 기억 안 나는 그 병사의 이름을 딴 개울을 보고 충격을 먹고 그랬습니다.


제 일신의 안위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북한과 같은 국가에서는 절대 살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서 

남의 나라 전쟁에 세계 각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참전해서 목숨을 잃고 그 결과 현재의 한국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면 저절로 경건해집니다.

물론 각각의 나라들이 파병을 한 이유에는 다양한 의도와 배경이 작용했겠지만 일단 결과만 놓고 보면 

그 젊은이들의 죽음을 밟고 서서 제가 이렇게 필리핀 사람이랑 전화영어 수업 하고 아이패드로 게시판에 글 쓰고 있는 거니까요.


글 쓰고 나니 조만간에 UN 묘지에 한번 더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 제목에 대한 댓글도 환영입니다! 열심히 놀러다니는 게 인생의 목표 중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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