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4 23:51
저는 무신론자이고, 아빠쪽 집안은 모두 개신교도 입니다. 그냥 평범한 수준의 신자라기 보단 장로도 여럿이고 목사도 있고 막 그래요.
저는 열두살 무렵까진 강제로 교회를 다녔는데 일단 엄마가 비신자고, 원래도 친척들에 비해 신실하지 못했던 아빠까지 서서히 교회에서 멀어져서 종교의 자유를 획득했고,
중학생 때 성당 잠시 기웃거리다가 좀 더 나이가 들고나서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된 경우입니다.
생각해보면 꼭 개신교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든 '신' 내지는 '창조주'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믿은 적이 없는 것 같고요.
전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쪽 친척들 그닥 좋아하지 않고, 그쪽에서도 그걸 아는지 어설픈 전도 따위 예전에 포기했는데 삼촌은 예외네요.
꽤나 재밌고 말이 통하는 분이셔서 삼촌은 좋아하고, 숙모랑 사촌동생들까지 그 가족 전부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삼촌은 저를 개신교도로 만드려는 시도를 참으로 꾸준히 하십니다.
2010년도에는 새신자 데려오기 주간이라고 한번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길래 삼촌이 부탁하니까 가주는 거라고, 다시는 안 간다고 못 박고 가서는
예배 후에 점심 먹으면서 한바탕 무신론을 펼치고 왔는데(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어요),
그러고 일년쯤 뒤였나 저희집에 놀러오셔서는 웃기지도 않는 일화를 얘기하며 또 전도를 시전하셨습니다.
무슨 목사 설교랬나 그랬는데, 그 사람이 어린 시절에 요구르트를 먹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사주지 않자 '난 요구르트 700개도 먹을 수 있는데!'라며 앙심(?)을 품었답니다.
그러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없는 나라에 살다가 다시 귀국을 해서 오래간만에 요구르트 아줌마를 보고는 어린 시절이 생각 나서 수레 안의 모든 요구르트를 다 샀고,
그 다음, 그다다음 아줌마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집에 와서 요구르트를 세어보니 딱 700개였다는 얘기를 풀어놓더군요.
그래서 전 기독교라는 종교는 현세구복적 신앙이 아니지 않느냐,
삼촌네 신은 죽고나서 천국 가면 요구르트 실컷 먹게 해주는 신이지 현실에서 요구르트 700개 먹게 해주는 신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듣기에 이 이야기는 그냥 유아기에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멀쩡해 보이는 성인의 판단력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라고 했고요.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자기 이름으로 벌어지는 세상의 그 모든 폭력을 내버려두면서 고작 어떤 인간 하나가 요구르트 700개 먹고 싶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살뜰히도 챙겨주는 수준의 신이라면 그런 신 따위는 요구르트에 빠져죽어야 마땅하다-였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요구르트 일화 이후로 2년 가까이 조용하길래 포기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삼촌이 또 놀러오셨는데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라는 책을 가지고 와서 "니 책 좋아하제? 그냥 소설책이니까 한번 읽어봐라" 이러면서 또 전도를 시전하셨습니다.
사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책 50권 읽기라서 이번 주말 동안 500쪽에 육박하는 그리스인 죠르바를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그 책의 1/4 정도밖에 안되는 예수 책을 읽으면 더 헐렁한 주말을 보낼 수 있겠구나 싶었고, 무엇보다 계속 되도 않은 짓을 하는 삼촌이 불쌍하기도 해서
까짓 읽어나보자 라는 마음으로 일단 그 얍실하고 쬐깐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긴 읽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참으로 얄팍하고 독자를 바보로 아는 책이더군요.
한 20%쯤 전개된 지점부터 힌두교니 불교니 이슬람이니 잘 모르는 종교들의 사상을 늘어놓으며 혼란을 유도하더니 예수를 부정하면 고대사 전체가 뒤집힌다질 않나,
성경무오설로 보이는 헛소리를 하질 않나 여튼 이걸 다 읽어야 하나 삼촌이고 뭐고 당장 폐지함에 집어넣어야 하나를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어째저째 읽긴 다 읽었습니다만 참... 책이 너무도 수준 미달이어서 불쾌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갑갑할 지경이었습니다.
중간중간 깨알 같이 이슬람을 까는 주제에 자기들 종교의 모순은 다 넘어가고, 그냥 무조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면 장땡이라니
전도를 목적으로 이런 책을 쓴 작가나 무신론자를 상대로 전도를 하겠다면서 이런 책을 선물할 생각을 한 삼촌이나 절대 마케팅 관련 업종에는 기웃거리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사실 뭐 딱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삼촌이 불쌍해서 이 부질 없는 짓을 포기하셨으면 싶은데 방법은 당연히 없겠죠?
혹시나 좋은 방법 있으시다면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삼촌도 그만두는 길이 보이면 고마워 하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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