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22 22:29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정성일이 쫓기듯이 무르나우의 선라이즈가 왜 그토록 위대한 영화인가를 말하는걸 들은이후로, 선라이즈는 한번 쯤 보고 싶지만 좀처럼 봐지질 않는 영화였습니다. 1920년대에 나온 무성 흑백영화를 컴퓨터로 보는건 힘든 일 아니겠습니까. 헌데 그 선라이즈를, '이동진'이 영화를 다보고나서 한시간넘게 해설까지 해준다니, 이건 노가 났습니다. 정말 계탄거 아니겠습니까. 저어 옛날 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수 있다는건 부산시민으로서 롯데자이언츠와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것 만큼이나 축복입니다.
큐브릭이나 타르코프스키같은, 영화의 공기한줌까지 제어해야만 발뻗고 잘 것같은 무르나우가 절대적으로 제어한 1920년대 버라이어티 무성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 3D나 IMAX를 잊고, 뾰족한 테크널러지를 잊고, 움직이는 사진으로의 영화, 순수한 몽타쥬. 이건 마치 조미료와 양념으로 범벅된 음식만 먹어오다가, 정말로 괜찮은 식당에서, 친절한 요리평론가와 같이 산나물 정식을 먹은 기분입니다. 아티스트같은 짭퉁 흉내내기 영화를 보는거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현대식으로 정비된 영화관에서 영화가 곧 신화였던, 소유되지 않았던 시절의 탄성과 경이, 순수한 놀라움과 엑스터시를 상상하며 공유하는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정돈 해볼만한 경험입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진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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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찬사는 저보단 정성일이 훨씬 더 끓어오르면서 비장하게 말해줍니다. 정성일씨도 한달에 한번 부산에 좀 내려와서 이런 이야기도 하고 영화도 같이보고 하면 얼마나 좋을지
네, 하나는 그러니까 일출이라는 뜻이 될 것이구요, 또 한 편은 뱀파이어의 이야기 노스페라투입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라는 감독은 두 편 모두 그 장편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 본다면 60분 쪼끔 넘어가는 영화인데, 그러나 무르나우는 이 영화 속에서 영화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줍니다. 무성 영화 시절의 최고의 꿈이라는 것은 영화 속에서 자막을 전혀 쓰지 않고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들의 움직임, 화면 배치만으로 보여주는 영화를 찍어내는 것이 모든 영화감독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에이젠슈타인도 이루지 못했고 채플린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르나우가 해낸 것입니다. 이 무르나우의 무성 영화는 영화의 모든 요소를 동원해서 소리 없는 이미지의 세계, 카메라의 흔들림과 그 섬세한 몽따쥬 공간만으로 말 그대로, 이것은 정말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의 우주, 하나의 질서 그러니까 영화가 아니라면 그 어떤 다른 것도 될 수 없는 '절대 영화'의 세계를 마련해 냈습니다. 그래서 그 무르나우는 일출에서, 노스페라투에서 카메라가 영혼을 담을 수 있으며,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최근의 영화들은 테크놀로지가 정말 많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테크놀로지로도 담을 수 없는, 그러니까 영화 중에는 정신으로 만드는 영화가 있다는 것을 무르나우는 보여줍니다. 무르나우는 카메라에 영혼을 부여한 시네아티스트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성일 in 정은임의 영화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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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서울에서 우연히 이동진기자와 마주쳤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 본 이동진은 정말로 세련되게 변했습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멋이드는 타입인거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부산까지 내려오다보니 머리스타일과 옷차림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왔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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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한 날에 부산에 봄비가 내렸습니다. 작년,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빨리 개장한 탓에 물이새던 건물을 누수점검하다 직원한명이 떨어져 추락사 했습니다. 그 뉴스를 본 뒤로 비가올때 기네스에 등재되어 있다고 자랑스럽게 간판까지 걸어놓은 영화의전당 외팔보 지붕밑에 흐르는 비를 보면 마음이 이상합니다. 원래부터 개장과 동시에 물이 샌다고 엄청나게 욕을 먹은 건물입니다. 하지만 이제 떨어지는 빗물을 보면 꼭 사람의 진액이 같이 섞여들어가 있는 거 같더군요.
전 이동진씨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 날 보고 '뭐야.. 귀엽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