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이 만든 300년도 안된 과학으로 동양의 수천년된 신비한 지혜를 설명할 수 없다... 뭐 이런 식의 주장을 많이 접해보셨을 겁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나름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죠. 동양 문화는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고, 16세기 이전까지는 어느 면으로 보나 서양에 비해 더 우월한 부분이 많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300년된 과학적 방법론이 깨어버린 것은 서양 고대 및 중세인들의 자연론과 인식체계이기도 하죠. 딱히 서양이 동양을 깨거나 이긴 게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이 비과학적 학문체계를 바꾸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양에 음양오행설이 있었다면 서양에는 4원소설이 있었습니다.  대학때 교양으로 들었던  '과학사' 시간에 들은 이야기이고 다들 아시는 내용이겠습니다만, 나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해서 올려봅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4원소설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물, 불, 공기, 흙이 만물의 기본 요소이며 만물은 이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의 가설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처음으로 주장되었던 설로 플라톤과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4원소 가변설'로 변형되었는데 그 내용은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 외에 물질의 특유한 성질인 건, 습, 온, 냉이 배합되어 만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후에 데모크리토스가 물질을 계속 쪼개어 나가면 더 이상 쪼개어질 수 없는 아주 작은 입자가 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원자라 말하고 원자설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의 원자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성에 밀려 그후 약 2000여 년간 인정받지 못하였고 4원소설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1803년 돌턴이 원자설을 제기하면서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이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초까지 서양인들은 4원소설을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물질의 구성요소에 관한 학설로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의 원리 나아가 인간 사회의 법칙까지 설명하는 만능이론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마치 동양인들이 자연사 인간사 대부분을 음양오행의 이론으로 설명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4원소는 평등한 것이 아니라 고귀하고 높은 것이 있었고 비천하고 낮은 것이 있었습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불-공기-물-흙입니다. 불은 고귀하고 높은 것이라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반대로 흙은 비천한 것이라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물질은 이렇듯 원래 정해진 고귀함의 정도에 따라 스스로 자기 위치를 찾아가려는 성질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이것으로 고대인들은 만유인력의 법칙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흙이 물에 가라앉는 것은 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자기 위치를 찾아가려는 힘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공기는 물보다 위에 있고, 불은 공기보다 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기방울은 물 위로 떠오르고, 불꽃은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물질은 4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비율은 각기 다릅니다. 예를 들어 금속은 흙과 불이 합쳐진 물질인데, 금속의 종류에 따라 그 비율은 달라서 고귀한 것일 수록 불의 함유량이 높고, 비천한 것일 수록 흙의 함유량이 높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금에 불이 가장 많이 들어 있고, 은이 그 다음, 철은 흙의 함유량이 높은 물질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금속에 들어 있는 불의 함유량을 높인다면, 철을 금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이 연금술입니다.

 

물질에 고귀한 것과 비천한 것이 있듯이 생물에도 계급체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동물도 4원소로 이뤄져 있지만 하등동물일 수록 흙과 물에 가깝고, 고등동물일 수록 공기와 불에 가깝다고 여겨졌습니다. 당연히 인간도 왕, 귀족, 평민, 천민의 계급이 있는데 이것은 애초에 고귀한 신분일수록 고귀한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분의 차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고정불변의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인간은 4원소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지만 4가지 액체로 채워져 있는 생명체이기도 합니다.  계절은 4계절이요, 방위는 동서남북의 4방위이며, 원소는 4가지이듯, 사람의 몸에는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 이렇게 4가지의 액체가 들어 있어서 그 비율에 따라 성격과 인간형이 달라진다고 믿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성격을  다혈질, 점액질, 황담즙질, 흑담즙질로 나누었는데, 그것은 각각 활기, 음울, 짜증, 우울에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는 철학자, 정치가, 예술가 등 정신노동을 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성질을 흑담즙, 즉 우울질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았고, 이것이 이어져 르네상스 시기에는 예술가의 천재성과 우울질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4원소설과는 다르지만 점성/천문학에서는 12궁의 별자리를 태어난 달과 연관지어 인간의 성격 및 운명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죠. 동양인들이 12간지를 따지듯 서양인들은 12궁 별자리에 관심이 많죠.

 

음양오행이든 4원소설이든 자연과 인간사의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시도였고, 오랫동안 진리로 믿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근대 학문에 의해 저것들은 존재 근거를 잃어버렸고, 점성술사 등에게만 다른 측면에서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로 쓰일 뿐이죠.

 

음양오행이든 4원소설이든 믿는 건 자유겠습니다만 현대 과학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이론도 믿는 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든 4원소설의 물질제자리위치론이든 하나만 택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면 질량보존의 법칙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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