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본회의 개의시간

2013.04.30 16:08

좋은사람 조회 수:3788

2시에 개의하는 본회의에 안철수 의원 혼자 앉아 있는 사진과 그에 대한 반응들이 2013년 4월 마지막날 오후를 뜨겁게(?) 달구네요. 

그 글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가 지웠습니다. 


통으로 안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같이 회의하거든요. 본회의 전에 새누리, 민주할 것 없이 의원총회하고 들어갑니다. 본회의 안건 중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이나 통과시키면 안 되는 것들 브리핑하는 회의에요. 당론결정하는 거죠. 저 의원총회를 제 시간에 못 끝내는 걸 욕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의원들 개인에게 사우나 갔냐느니 하는 비난은 과하다 싶어요. 안철수 의원이 정당소속이었다면 제 시간에 못 왔을 테니까요. 아니면 의원총회를 제 시간에 끝내도록 안에서 바꾸든가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다같이 욕먹고 바뀌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네요.


오늘 본회의는 아직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안건들이 다 정해지지 않아서 3시로, 4시로 연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안철수 사진을 둘러싼 사실이구요. 

전 이 사진에서 국회를 다루는 언론의 방향이랄까 시선을 봤습니다. 그리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게 쏟아지는 이런 관심이 걱정스럽습니다.

국회 본회의 개의시간은 2시입니다. 아침 9시 전에 출근해서 업무보는 직장인들에게 이 시간은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오전에는 보통 상임위 회의가 열리니 본회의는 오후에 개의하게 되는 거죠. 시간 많이 잡아먹는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는 본회의는 10시에 개의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정해졌다 하더라도 여야 교섭단체 합의에 의해서 시간은 변동이 가능하구요. 


이 해프닝(?)은 무소속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해야 하는 안철수 의원의 험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각 정당은 국회 내부의 의사일정과 의안들을 챙기는 지원조직을 운영합니다. 오늘처럼 4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이고, 처리해야 하는 안건이 많아서 상임위가 지연되는 경우에 소속 의원실로 끊임없이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통상 본회의 전에 저 의총이라는 걸 하거든요. 보통 본회의 시작 30분 전쯤 모여서 각 상임위 간사 의원들이 쟁점 법안이 상임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처리됐는지를 보고하고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지를 의논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히 상임위에서 통과된 것처럼 보이는 안건이 합의처리됐는지, 아니면 다수결로 표결한 거라 인원 많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죄다 찬성해서 통과된 건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각 당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안이라 하더라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판단하기에 무리수가 있다거나 하면 이런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반대합니다라고 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당론으로 할 걸 정하고, 당론이 아니더라도 찬성하는 편이 좋겠다 반대하는 편이 좋겠다하고 권고를 하기도 하고요. 


무소속인 안철수 의원은 이런 논의구조가 없습니다. 헌법기관으로서 홀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표결에 임해야 하는 거에요. 2시에 개의하기로 한 본회의가 전 단계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미뤄졌습니다. 이 말은 아직 오늘 본회의에서 표결해야 할 안건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2시에 열기로 한 회의라 2시에 온 것까진 좋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서 어떤 안건을 다루는지 파악이 된 채 그 자리에 참석한 걸까요? 


새정치를 하겠다는 안철수 의원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시간 지키는 일에 앞서 파악해야 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앞으로 모든 본회의에 시간 다 지켜 참석하고, 끝까지 자리지킬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리고 의원의 의정활동이라는 게 다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때 되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누구보다 먼저 욕하게 되는 것도 국민들이겠지요. 박병석 부의장이 출석 불렀다는 지난 주 목요일의 본회의에서도 안철수 의원이 오후에는 자리를 떴습니다. 김지선 후보를 만나서 위로했어요. 이런 식으로 의정활동의 우선 순위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전 안철수 의원에게 쏟아지는 '제 시간 지켜서 대단한 안철수'라는 관심과 찬사가 떨떠름합니다. 기본을 지키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저 부담을 어떻게 짊어져야 할 것인지 우려스러운 마음이 더 클 뿐이지요. 


그리고 언론. 저 사진을 찍은 기자들이 2시에 시작되어야 할 본회의가 왜 시작을 안 하는지 몰랐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국회 출입 하루이틀한 것도 아닐테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안철수 의원을 바보만들려고 한 건지, 여봐라 기존 의원들은 죄다 땡땡이치고 있다라고 고발하려고 한 건지 모르겠는 사진이에요. 전자일 거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만, 앞으로 2시에 열리는 본회의에 안철수 의원이 지각이라도 한다면 언론의 카메라는 어떤 프레임을 작동시킬까요? 그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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