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이란 배우를 좋아했습니다. 연기고 뭐를 떠나서, 안경을 끼고 어눌한 발음의 그가 좋았습니다. 안경을 벗은 그보다는 늘 안경을 낀 박신양이란 인물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전에 정말 우연찮게 `킬리만자로`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23살 겨울에 술에 취해 귀가길에 동네 비디오방에서 혼자 봤던 비디오였습니다. 박신양은 안경을 벗고 나왔지만 그의 발음과 독특한 말투는 참 좋았습니다. 더구나, 당시 느와르 같은 어두운 장르를 좋아했던 제게는 참 좋았던 영화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박신양보다는 안성기씨와 정은표씨가 더 빛이 났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죽기 직전의 목소리로 부르는 듯한 박신양씨의 `너에게`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어떻게든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었던 곡이었는데, 인터넷 어느 블로그에서 구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또릿또릿 가사가 정확히 들리진 않으나.

늘 잘때 들으면서 자는 곡입니다.  방안의 모든 불을 끄고, 눈을 감으면 집 밖의 소리들 사이로 노래 전주부분의 파도 소리가 귀랑 제 머릴 쓰다듬어 주는 느낌입니다.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바다가 없는 지금 이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더 포근한 느낌입니다. 더구나, 노랫말(잘 안들리지만)과 목소리는 가끔 너무 쉽게 지쳐버리는 저에게 위안이 됩니다.

 

이 곳에 온 후로 가끔씩 지칠때,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늘 힘찬 목소리로 희망찬 조언과 명언들은 들려줍니다. 그들이 다 저를 생각하고 걱정해줘서 하는 말이므로 조용히 웃으면서 듣지만, 그런 힘찬 목소리에 더 지칠때가 있습니다. 아니, 늘 그랬습니다. 이 노래는 부르는 사람도 많이 지쳤으면서 듣는 이를 걱정해주는듯 합니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부르는 사람은 노랠 부르는 자기 자신한테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몇 년전, 바닷가 등대 앞에서 오래된 친구와 노래를 들으면서 캔맥주에 땅콩을 먹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서로가 힘든 걸 알아서인지, 만나면 힘든 이야기를 거의 안했습니다. 만나면 그냥 재밌는 이야기와 이런 저런 이야기만 했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술한잔 가볍게 할래? 하면서 불렀을 때 나오던 그 때가 이미 어느정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 좀 있는 저라서, 가끔씩 밝은 목소리와 재밌는 글자로 연락해주는 친구가 무척 고맙습니다. 10년 전의 5,6명의 친구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하면서 남은 몇 안되는 친구입니다. 노래를 들을때마다 친구가 생각나서 고맙고 미안하고 무서워집니다.

서로 잘되고 여유가 있게되서 만나야 하는데, 친구는 고향에서 되든 안되는 열심히 사는데. 이 먼 곳에서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른지.  

 

다행히 비가 안 와서 빨래는 빳빳하게 잘 말라 있었습니다. 옥상에서 담배를 한대씩 피는데, 그 때마다 높은 아파트 숲 사이로 집이 생각납니다. 바다를 안 본지 오래되서, 저 시퍼런 하늘에서 큰 파도가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방금, 글을 쓰다 말고 옥상에 담배를 피고 왔습니다. 어디선가 읽은 건지, 본 건지.. 밤에 별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 누군가도 그 별을 보며 나를 생각할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친구든, 부모님이든(부모님은 주무시겠습니다만) 혹은 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잘 살고 있을 그녀가 나를 생각해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새벽이 되길 빌어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34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89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048
120568 나중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결로은 바낭;; [2] 하프더즌비어 2010.08.23 2040
120567 [이터널 선샤인] 질문 (스포 있음) [2] 로즈마리 2010.08.23 2482
120566 오늘 구미호 [4] ageha 2010.08.23 2374
120565 오늘 놀러와. [2] mithrandir 2010.08.23 2739
120564 [사진] 일상 속 여러가지 이야기 [8] 서리* 2010.08.23 2401
120563 식스센스 봤죠 [8] 가끔영화 2010.08.23 2732
120562 NVIDIA Graphics Driver 업데이트라는걸 하라고 하는데요. [4] 토토랑 2010.08.23 1770
120561 이럼에도 걸그룹보고 헬레레 하고 있는게 문제가 없을까요? [9] 자연의아이들 2010.08.24 3959
120560 이것저것 잡담... [3] AM. 4 2010.08.24 1954
120559 청춘불패 일본편 (일본 방송에 나간 버전은 국내와 다르군요) [3] mezq 2010.08.24 3748
120558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16] 비늘 2010.08.24 2815
120557 삼색 뮤지컬 이야기 - 잭더리퍼 / 미스사이공 / 빌리 엘리어트 - [7] 질문맨 2010.08.24 3891
120556 바낭_본방을 보고싶지 않아요.. [3] Maleta 2010.08.24 1927
120555 괜찮은 양꼬치집 소개-(사진 스압) [16] 푸른새벽 2010.08.24 3994
120554 이젠 별개 다 3D.. [15] 서리* 2010.08.24 4387
120553 (질문)10월 중순 즈음에 휴가를 간다면. [4] 쇠부엉이 2010.08.24 2200
120552 [바낭] 등업인사 (?) & 베이킹 [9] Ms. Cellophane 2010.08.24 2312
120551 꿈 같겠지만, 이렇게 늙었으면 좋겠어요. [11] 서리* 2010.08.24 4119
» 박신양씨의 `너에게` (킬리만자로 O.S.T)를 듣다가. [2] 말린해삼 2010.08.24 2541
120549 '하루키 월드'를 둘러싼 논쟁 [12] 보이즈런 2010.08.24 421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