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기억하고 유지할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상정하고, 그 지식에 일정량의 힘을 꾸준히 쓰지 않았을 때 지식을 잊/잃어버리게 된다면, 어떤 지식을 기억해야 할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역사에 약해서 역사의 세부 사항은커녕 그 피상적인 전체 형태도 어림 짐작하지 못합니다. 소위, 인문계열에서 국사파와 지리파로 나뉘어 공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날수록 시간 상의 이해도는 떨어지는 가설 편견-집단을 상정한다면 저는 언제나 지리파였습니다. 이는 중학교 세계사부터 드러난 성정으로 도무지 연도 순으로 된 그 무엇이든 제 머리 속에는 순차 배열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피해갈 수 없는 수학능력평가 때문에, 인생에서 그다지 부딪힐 일 없는 국사를 전심전력으로 머리 속에 집어 넣으려고 노력한 3년 간의 결과도 한 줌 남아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공인 국사책은 국가에서 만들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어도 8번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고한 역사의 모델을 한 자락도 그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게 있어 역사란, 필요할 때 검색하거나 요구되는 영역의 관련 도서를 찾아 읽어 보충하는 정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몇몇 여론조사를 보고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를 묻는 지상파 방송국 위주의 방송이 무서워요. 오답이거나 "몰라요"거나 인터넷 상에 캡처가 돌아다니며 영원히 놀림받는 상징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또한 제 자신을 통해 경험했듯 국사든 근현대사든 우리나라의 필수 교육에 있어봐야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 때 그 때 검색해서 참고할 수 있는 확실한 검증을 거친 참고자료(레퍼런스)나 접근이 간편하고 공인된 영역을 통해 제공하기나 했으면 싶습니다. 어디 무인도에 떨어져서 한국인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역사서를 집필할 일이 없는 이상 그 지식들을 힘써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각각의 역사사료를 기반으로, 그 사료에 대한 가치판단을 어떤 논리로 어떻게 할 수 있느냐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 후에 나오는 개념과 이야기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도무지 어떤 식으로 무엇을 위해 꺼내는지 저도 모릅니다. 사실 전술한 것들은 생각나는대로 적다보니 갈길 모르고 여기 저기로 뻗어나가는데 아무래도 본론과는 별 관계 없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 지 몰라서 주저리 거렸는데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생뚱맞긴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개인의 지식 영역입니다.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보를 기억합니다. 보시다시피 자신이 볼 수 없는 영역은 관측이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리고 지식 영역을 가르는 2가지 방법입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은 아주 여러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생각했을 때 중요한 것으로 나눠봤습니다. 여기서 유심히 봐야 할 것은 관측 불능 영역과 내가 모르는 것 영역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왼쪽의 그림 상에서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으로 나눠져 있지만, 저 흰색 영역은 [나의 지식]이며 [[내가 아는 것]을 내가 앎]과 [[내가 모르는 것]을 내가 앎]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 자체를 몰라야만 진정으로 모르는 것이며, 그 지식이야말로 관측 불가능한 검은 공간에 놓여질 수 있습니다. 왼쪽과 마찬가지로 [남이 아는 것]과 [남이 모르는 것]에 대해 내가 (사실은) 알고 있는 영역으로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이 두 기준을 동시에 나타내면,



이런 형태가 됩니다. 이해하기 쉽고, 표기하기 간단하게 O와 X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앞의 OX는 나, 뒤의 OX는 남에 대한 앎 기준입니다. OO는 [나도 알고 남도 안다]고 내가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서로 대화할 때 자신의 입장에서 전제와 함의로 쓰이는 것들은 상징이며, 그것들은 남도 알고 나도 안다는 나 자신의 믿음에 입각해서 쓰입니다. 나는 알지만 남들은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 굴러다니는 이형의 상상들, 남에게 언급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감정과 논리들, 고도로 복잡성을 띄는 학문 영역들, 거의 대부분의 주관 체험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서로가 모른다고 으레 생각하는, OO와 역행하는 상식이 있습니다. 예컨데 미래라던가, 물리세계에서 관측이 불가능한 영역들은 나도, 남도 모른다고 우리는 인식합니다. 마지막으로 라캉에게서 이름을 빌려오지 않고, 제 멋대로 이름붙인 [진료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 생활에서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아는 것을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은 진료가 가장 알기 쉬운 예가 아닌가 싶어 붙였습니다. 의사들을 통해 우리는 "내 자신"에 대해 나는 모르지만 남이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괴이함을 경험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현실계에 속하는 지식이 상징계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진료계와 상상계 둘 중 하나를 거쳐야 하는데 상상계를 거칠 경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진료계를 거칠 경우 더 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현회와 같은 [나]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설명꾼]이 흥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번의 고치는 비용에 대해 아까워하는 이유도 XO가 중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OO상징/상식은 남이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주관자들이며, 여기서 죽기 전까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죽은 이후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누구도 다시 돌아와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관측 불가능 영역에 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남] 사이에 어떠한 통로도 없습니다. 그림에서는 동일한 십자+ 형태로 그려져 있으나, 서로의 영역이 겹친다고 아무도 특정지을 수 없습니다. 즉,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것에 대해서 남도 똑같이 그 영역을 [나도 알고 남도 안다]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상징계 뿐만 아니라 다른 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이해의 형태라면 나의 OX와 남의 XO는 동일해야 합니다. [나]의 [나는 알고 남은 모른다] 생각하는 영역과 [남]의 [나는 모르고 남은 안다]라 생각하는 영역 말이지요. 이것이 거의 겹쳐지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정체성과 그 이외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남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라고 말하길 좋아하며, [나는 그것에 대해서 모른다]라고 말하길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영역의 괴리가 어떤걸 뜻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게 분명한 것은 [남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에 대해 나는 모르는 것]에 대한 투쟁이 가상과 현실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 이외에 모두 [남들]이기 때문에 세계의 인식지평은 [나]를 중심으로 정렬하는게 보기 좋습니다. 나 이외의 남은 다수이기 때문에 남을 중심으로 그렸다간  2차원 그래프에서 감당할 수 없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의 형태,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것을 내가 앎]과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것을 남이 앎]이 겹치는 부분은 왼쪽 위의 저렇게나 작은 부분입니다. OOOO. 우리는 상식을 세계 총체의 자아에게 요구하지만, 그것은 지식 전체에 있어 매우 좁은 구간입니다. 보시다시피 모두가 동시에 완결 무결하게 앎은 아주 좁은 곳에서 수반되며, 그 이외의 논란거리들이 훨씬 많은 영역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을 [알]고, 무지의 앎을 서로에게 고백하고 인지함으로서 남이 나와는 달리 더 선행하여 아는 부분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세계의 상식을 빠르게 늘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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