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지니어스 결승전 1경기 인디언포커.


초반 8을 들고있던 홍진호는 김경란이 들고 있던 7을 보고, die를 선언합니다.

그것을 보고있던 김구라는, (자신을 떨어뜨린 홍진호에 대한 적개심과 김경란을 응원하는 입장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이런 말을 합니다.


"홍진호가 이게 약점이야~. 약간 새가슴이야."


물론 게임은 승부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구른 관록이 있는 홍진호의 완승으로 끝납니다만,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딜에서, 홍진호는 김경란이 들고있는 2를 보고, 올인을 떄린다음 +2아이템을 더하는,

절대로 지지 않는 안전한 선택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두 장면을 보면서 저는 약 10년전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1년이 364일이 된 사건, 바로 임요환에서 '삼연벙'을 당하던 그날의 사건입니다.



#02.


인터넷을 보면 많은 분들이 '임'요환과 홍'진'호의 '임진록'을 기대하면서 치킨을 시켰는데, 치킨이 오기도 전에 허무하게 초반 전략 3번에 경기가 끝났다...는 회고를 하시고는 합니다만

저는 그 당시 임요환이 홍진호에게 삼연벙을 시전하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ㅡㅡ;


그날 현장의 분위기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명승부에 대한 기대로 후끈 달아오르던 경기장은

임요환이 첫번째로 벙커링을 시전하자 "역시 임요환이다. 승부를 알아. 근데 좀 허무하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임요환이 두번쨰로 벙커링을 시전하자 "와 임요환 저 독한 인간."이라는 분위기로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벙커링이 출발하는 순간,


현장에서는 탄식과 비명소리가 난무하였고,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진 도시처럼, 허우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임요환의 팬들도 임요환이 이렇게까지 할줄은 몰랐다면서 어쩔줄을 몰라했고,

현장에 있던 홍진호의 팬들은 어떻게 저럴수가 있냐며, 홍진호 어떻게하냐며 걱정과 탄식을 내뱉었죠.

그걸 당하고 있던 홍진호 역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채로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고요.



하지만 그 순간, 유일하게 냉정을 지켰던 사람이 한명 있었습니다.

그날 차갑게 얼어붙은 눈동자로 모니터를 주시하던 임요환은, 마치 사형을 집행하는 도부수와 같이 홍진호를 박살냈습니다.



#03.


당시 스타판에서 게임좀 한다는 프로게이머 치고 재능이 없었던 사람은 없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게이머는 대표적으로 두 사람을 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니어서 10화인가에서 나와 "어버버"거렸던 이윤열이요,

다른 하나가 바로 홍진호입니다.


하지만 신은 홍진호에게 천재성을 주는 대신 2등밖에 못하도록 저주를 걸...었던건 아니고, 한량한 성격을 주었습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싸우는 프로게이머답지 않게 느긋하고 둥글둥글한 성격 때문인지

홍진호는 승부 자체에 대해서도 집요한 집착을 내비친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방 컴퓨터가 고장나서 재경기를 치뤄야 할 떄도 별말없이 ok했고(심지어 결승전인데도!),

반대로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의 컴퓨터가 에러가 났을때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죠.


홍진호는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천재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동시에 프로게이머들 중 가장 승패에 초연하고, 승부 자체를 즐기는... 어떻게 보면 순수한 승부사였습니다.

(같이 천재라고 불리웠으며, 동시에 실제 성격이 어버버하기로 유명했던 이윤열은 오히려 승부에 있어서는 집요함과 포기할줄 모르는 근성을 가졌던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었죠)


반면 홍진호와 대척점에 서있던 임요환은 달랐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간에 이기려고 들었고, 그를 위해서는 게임내에서 사용하는 각종 도박수는 물론이요, 미묘한 심리전과 기만책도 서슴지 않았죠.


글쎄요, 이런 대비되는 성격 탓에 홍진호가 늘 임요환의 벽 앞에 가로막혔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메이저대회 커리어 준우승 6회중 3회가 임요환에게 패배하면서 쌓였던 것도 그렇고...


그래도 홍진호는 그답게, 느긋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본인다운 깨끗한 승부를 계속 추구했었습니다만...

임요환에게 4강전에서 3연벙을 당하던 그 날, 그 날 이후로 홍진호는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폭풍'이라는 자신의 스타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스타일로 승부를 즐기던 홍진호가 집요하게 승리를 위해 물어뜯지 못했던 지난날의 자신이 잘못되지 않은걸까...하는 회의에 빠진거죠.


그래서 안전하게, 좀더 안전하게 승리를 따 내려고 하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폭풍'이 몰아치는 빈도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으며,

동시에 그의 경기 역시 매력을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소극적으로 점점 변해가면서 자신감도 잃어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요.


홍진호는 그 날 이후로, 메이저대회 결승무대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04.


저는 더 지니어스 결승전을 보면서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홍진호는 아직도 '그 날'의 삼연벙의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않구나- 하는.


물론 게임을 읽고 승리에 다가서는 감각은 역시 게이머 생활 할떄의 '천재'로 불리우던 그의 센스 그대로지만,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취하는 방법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답지 않다면 그답지 않은 '안전하게 승리하려는'... 그런 방법이었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 선수의 팬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후폭풍이 남긴 잔상이 아직까지 홍진호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뱀다리.


01) 삼연벙을 비롯해서 홍진호를 언제나 가로막고,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킨 장본인 임요환과 홍진호는 의외로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잠시 한팀에서 뛰기도 했었던 것도 있겠지만, 지금껏 임요환이 홍진호에게 저질렀던 만행들을 생각해보면 둘의 사이가 좋다는게 참 기적같은 일이긴 해요. 물론 홍진호가 그만큼 둥글둥글한 성격이어서 그렇긴 합니다만.


02) 홍진호의 2등 징크스...는 홍진호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홍진호가 속한 팀은 단 한번도 팀 단위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팀 단위 리그에서 23연승인가... 연승을 하더라도 결승만 가면 꼭 홍진호와 그의 팀원들은 못하더라고요.

심지어 홍진호가 속한 팀인 KT의 팀단위 리그 우승은 홍진호가 군대갔을때에 이루어졌습니다. ㅡㅡ;

홍진호가 군 전역하고 다시 팀에 복귀하니 다시 귀신같이 준우승...


03) 뭐.. 더 지니어스 2기에 프로게임쪽 사람 한명을 더 섭외하지 않을까...하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일단 1기 출연자 홍진호가 프로게이머 출신이니까요.

하지만 아마 홍진호 이외의 프로게임쪽 사람이 방송에 참여한다면, 예능 분량도 못뽑고, 그렇다고 게임을 잘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병풍화가 되리라고 봐요.

홍진호니까 그만큼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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