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질문 두 개에 답을 한 번 하고 있는 제목입니다.

 

 

1.

 

  음, 피곤한 하루하루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듀게에 괜한 어그로성 글을 끌면 더 피곤해지겠지요? 하지만 예전부터 정말 궁금하던 것이 있습니다. 홍상수 씨는 거장입니까? 네, 이건 정말 모르겠어서 하는 질문입니다. 아마 이런 질문에 홍상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기분이 나쁘실지도 모르겠네요. 홍상수 영화는 보고 말하시나요? 네, 뭐 몇 편 봤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영화 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면 저도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물론 진짜 제가 영화 보는 눈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을 차치하고 저의 질문은 순전한 궁금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이라는 사람에게서 들리는 몇몇 소문들을 들은 때가 마침 북촌방향을 보고 나온 때였는데 솔직히 그 루머의 이야기와 겹치는 듯한 영화 내용이 저를 식겁하게 만든 것 역시 제가 홍상수 감독을 생각할 때 좋게 생각하지 못하는 점이라는 것은 빼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북촌방향을 볼 때 어떤 감독이 만든 것인지 일부러 알려고 하지도 않고 보고 나왔는데 더럽게 재미없네-하고 봤더니 홍상수 감독 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사람 영화에 제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둘째로 넘기고, 저는 이 사람의 영화가 모조리 다 불편합니다. 불편한 것 때문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은 아니고 재미를 못 느낌과 동시에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남성들은 여자와 자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 혹은 뭐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형들의 아내랑 자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불편한 지점은 홍상수 감독이 김기덕 감독보다 왜 여성들 혹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더한 비난을 받지 않는지가 궁금하다는 뒤틀린 심사 때문입니다. 김기덕 감독 본인이 드러내는 자학적이고 순박하고 어떻게 보면 무식하고 생명만 넘치는 동물 같은 영상에서 저는 남성 혹은 마초성의 본위를 느끼지 못하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로부터는 강한 변태적 욕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건 심지어 감독 자신이 교묘하고 찌질하게 숨겨놓은 듯한 선물이에요. 그래서 기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밀스러운 성적 욕망자의 가면과 소도구로서의 영화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의 영화에 높은 평가를 주는 분들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왜 이런 영화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는지를 궁금해하는 척하며 비난하는 글이 아니라, 저는 정말 순전히 와닿지가 않습니다. 그가 거장인 이유가 말이지요.

 

 

2.

 

 

  씨네 21에서 퍼시픽  림을 소개할 때, 드리프트할 때 차오르는 액체가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LCL이라는 걸 보고 그거 본 날 바로 예매해서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스토리와 연기가 별로일 거라 좀 각오하고 봤는데 각오를 워낙 단단히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매우 재미나게 봤습니다. 육중한 카이주와 예거의 싸움은 타격감과 중량감이 압도하더군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정면 박치기는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덕후 냄새가 풀풀 나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스토리를 기대하는 건 좀 웃긴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너무 캐릭터들을 집중하지 않고 휙휙 버려버리는 것은 마치 거대 자본이 쓸모없는 잉여들을 쉬이 쳐내는 장면 같아서 썩은 미소가 픽하고 터지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러시아 여자 조종수는 너무 레이디 가가 같더군요.

 

 

 

3.

 

 

  마찬가지로 씨네 21에서 와킨 피닉스 취재(?) 같은 걸 해줘서 봤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와킨 피닉스 첫사진이 너무 제레미 아이언스 같아서 좀 놀라긴 했습니다만. 마스터를 이번에 꼭 봐야겠다 마음 먹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기사였습니다. 와킨 피닉시는 자신이 찍은 연기를 두 번 다시 모니터하지 않는더군요. 그래서 자기가 나온 영화도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자신의 굉장한 소심함과 연관이 되어 자기 자신의 연기를 풀어놓기 위한 방법 같던데 굉장히 독특했어요. 연기를 대놓고 처절하게 괴롭게 한다는 그의 연기관이 인간 군상의 사는 모습과 동일한 것 같아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자기 자신을 어떠한 틀에 고정시키는 것을 강박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 저는 나이를 먹으면서 이렇게 더 반항적이고 모난 인간이 좋아집니다. 만약 이 사람이 리버 피닉스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어쩌면 리버 피닉스가 지금까지도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사람들이 죽은 과거를 아름답게 피어있던 꽃으로 보려고 하는 자기보호적 습성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과거미화, 죽은 사람에 대한 동경인 것이지요. 그러나 와킨 피닉스의 '추락사' 같은 연기는 지금 살아있는 날 것의 꽃으로서 그 나름의 독자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고 봅니다. 마스터, 참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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