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쓴 글을 가져와서 좀 고치는 거라 반말체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원작은 보지 않았는데.. 봉준호 감독은 기차라는 폐쇄된 공간을 가지고 계급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삼아
이렇게 선명하고 무게감있게 영화를 만들어낸 것 같다.. '괴물'도 그렇고 현실에 없는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내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고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나로선 여러 모로 만족스럽지 않은 영화였다. 어디서 보니까 편집되어 잘린 부분이 많은 것 같던데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다만 회색 수트를 입은 백인 경비(악역이랄까)와 영화 속
송강호씨가 칼빵이나 총빵을 맞고도 좀 시간 지나니까 "으... 잘 잤네" 삘로 일어나서 다이하드 찍는 것처럼
싸워대고 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전체적으로 짜임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긴장감이 더해지는
건 있었지만 특히 리얼톤이랑 만화같은 묘사랑 설정 등이 (물론 박찬욱식 우화같은 느낌이 의도된 것이지만)
나로서는 그 영화의 세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는 면이 있었다.

http://www.dvdbeaver.com/film2/DVDReviews45/enemy%20at%20the%20gates%20blu-ray/enemy_at_the_gates_25.jpg

그럼에도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윌포드가 에드 해리스라는 사실에서 예전에 본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가 생각났다.
그 영화에서 에드 해리스는 전쟁 중에 호화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고급 장교를 연기했다. 영화 중 그는 독일군
장교로서 비싸 보이는 열차칸에서 여유롭게 음식을 먹는(내 기억에 여기서도 스테이크였던 것 같다) 모습이
있었다. 그로서도 설국열차를 찍으면서 그 부분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영화는 계급 문제를 다루면서 진지하지만, 언제나 영화의 설정에 대해서 최대한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부분을
따져가면서 보려는 관객들이 있고 이 영화에 있어서 나도 어느 정도 그러하다. 열차가 아무리 잘나도
그 정도의 자급자족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며 누군가는 열차 외부에서 선로를 관리해야 하며 엔진의 부품이
부족한 것을 고작 초딩 혹은 초딩도 안 되는 나이의 인력을 이용해서 관리한다는 건 딱히 와닿지 않는다.

그런 물질자원적인 문제도 있고 시설의 관리도 중요한데 영화 속의 천민들은 인력의 생산 기능만 있을 뿐,
노동을 하지 않는다. 아니, 어찌보면 영화에서 노동을 하는 이들은 윌포드와 (비인간적이지만) 오버되는 인구
수를 폭력적으로 조정하며 폭동을 막는 경비 인력과 몇몇 요리사, 세뇌교육을 시키는 교사 정도 뿐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천민들을 노동 계급으로 뒀다면 더 진지한 영화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계급 이야기를 할 때 노동이
빠지면 허전하지 않나.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 애초에 설국열차는 왜 달리는 걸까? 세상이 죄다 얼어붙었기 때문에 열차를 굴림으로써 에너지를 소모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종의 발전기같은 개념으로 열차의 기동 자체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설정이 있다면

좀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소모되는 것이 주로 천민들의 노동력이거나 혹은 산 사람 그 자체(이렇게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듯)라고 할 수도 있겠고.. 천민들은 이중으로 착취당한다는 설정.

2. 열차의 철로를 누군가는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열차 외부에도 소수지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외부의 사람들도 척박한

외부에 있기 싫어서 열차에 타고 싶어하지만 오직 선택되고 협조적인 사람들만 근근히 열차에 탑승할 수 있다. 열차 내

천민 아래의 존재인 샘.

 

3. 암만 생각해도 천민들의 생식을 강력하게 통제하거나 하는 게 일부러 태어난 이를 죽여서 원한을 사는 것보단 정치적,

경제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

 

4. 천민들의 존제 자체가 미스테리하다. 인구 생산을 그들만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노동도 하지 않는데 그들을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상류층들 입장에선 무슨 쓸모로 데려가는 것인지?


어쨌건 여러 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돈 주고 극장에서 본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여러 모로 아쉽지만
여러 모로 볼 만한 영화였다.

 

푸른 제복을 입은 열차 간부(일본계) 캐릭터는 예전에 화제였던 일본 영화 '철도원'의 패러디 혹은 오마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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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쨌건, 영화 속에서 인류는 멸망한 건지? 무기도 뭣도 없는 애 둘이서 처음 마주친 생명체가 토끼 같은 것도

아니고 북극곰이라니..


괴물에서처럼 송강호가 장총을 들고 열차에서 튀어 나와서 그 북극곰과 대치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엔딩 B안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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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다 쓰고 ps) 혹시 몰라서 그러는데 제가 언급한 설정의 구멍같은 것들이 감상에 방해되고 말고는 결국 취향 문제이며

설정이 허술해도 영화 나름의 세계관이 잘 구축되는 좋은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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