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알게된 것은 작년에 떠난 여행지에서였어요

 

 늘 혼자 떠나는 여행이지만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밤이 외로운 건 익숙해지지가 않더군요

 

 작년에 그 나라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도시라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인지라  

 

 밤에 할 일이 별로 없더군요

 

 그러던 중 게스트하우스에서 알게 된 여자분이 한분 있었어요

 

 첫인상은 굉장히 철이 없다는 느낌

 

 그런데 그때 제가 외로워서 그랬는지

 

 그분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게

 마음에 위안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날 기분좋게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는 시기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우리는 옆나라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죠

 

 저는 국경을 넘어 옆나라로 가면서도 그분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어요

 

 옆나라에 대한 정보도 많이 없었고

 그곳에서는 호텔을 예약해놨던지라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더 그녀와의 만남에

 많은 것을 기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그녀를 만나지 못했어요

 그녀의 부주의 때문이었죠

 

 저는 그때 섭섭하기도 했고 아주 화가 났지만, 이내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빠져들어

 현지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즐겁게 여행을 하다가 돌아왔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고 지냈어요

 

 가끔씩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카톡의 친구목록을 보다가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언뜻언뜻 그때를 떠올리는 정도의 일이 있기는 했지만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았죠

 

 그 여행을 다녀오고 일년이 지나가는 동안 제 삶에서 드라마틱한 일들이 좀 있었고

 짧고 긴 여행을 몇 번 다녀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육신은 빛을 잃어가는데 자기애만 강해져서

 연애상대에 대한 기준도 까다로워졌고

 

 긴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져

 연애보다는 일과 여행을 삶의 중심에 놓고

 

 바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그간의 연애에 좀 지치기도 했고

 연애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러다가 우연히 작년에 갔던 그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과 마주하게 되었고

 그 나라에 도움을 주기 위한 재능기부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 나라를 떠올리다보니

 그녀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문득 그녀를 떠올리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불현듯 사는 게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삼스러운 일이었지요 두렵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었어요

 

 마침내 일년만에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오더군요

 

 그래서 약속을 정하고 만났는데

 마침 그날은 비가 엄청 많이 오는 날이었어요

 

 자주 만나는 친구였다면 약속을 취소했을 법한 폭우였지만

 그분과는 이번에 약속을 취소하면 다음번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고 그분을 만났는데

 역시나 제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렇지만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고

 같이 와인을 마시고

 

 새벽녘의 한강을 함께 걸으면서 제 마음이 스르르

 그녀에게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시 만나자는 의사표현을 하지는 않았는데

 나름 만족스러운 지금의 생활을 깨고

 

 누군가에게 맞춰가는 연애라는 걸 다시 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저는 또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바쁘게 열심히 일을 하며

 한달 정도 서로 연락없이 지냈는데

 

 지난 토요일에 그녀에게 연락이 왔고

 그날밤 저는 그녀를 보기 위해 이태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역시 제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보니까

 

 좋더군요 마음이 설렜어요

 

 그날밤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는

 함께 지내보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그간에 자유롭게 살아온 것을 억누르고 시작하는 연애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가득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저에게 가져다주는 위안이 나쁘지 않네요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저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요 좋아하고 있어요 

 

 오늘은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그녀에게 건넬 문장을 메모하면서 보내고 있어요

 아직 편지를 보내기엔 좀 쑥스러워서 조금 더 편해지면 그녀에게 그 메모들을 모아

 

 편지를 건넬 생각이에요

 

 이상형도 아니고

 혼자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지내는 즐거움을 포기해야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 데이트는 휴일전야로 잡았는데 함께 심야영화를 보고 한강을 걷기로 했지요

 

 그리고 다음주엔 근사한 타이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생각이에요

 

 그녀도 제가 이상형은 아니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더욱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여러나라를 거쳐 결국 이곳으로 돌아와 완성된 인연

 

 우리가 잊고 지내던 사이에도 여러나라를 넘고 넘어 우리의 인연은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일까요?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지만 오늘 이 마음으로 안심할 수 있으니 그걸로 된 거죠

 

 더 멋있고 더 자상한 남자가 되고 싶어요 이상형도 아닌

 

 여행지에서 알게된 나의 여자친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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