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홍보되었던 것처럼 투톱의 투톱에 의한 투톱을 위한, 배우의 영화...라기 보다는 최민식과 김지운 액션을 위한 영화더군요. 예정대로 한석규가 수현을 연기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죠. 이병헌의 캐스팅은 그런 지금의 영화에는 딱입니다. 이병헌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저그런 허수아비 역할을 잘 해줍니다. 김지운으로서는 좋은 일이었겠지만, 이병헌으로서는 싫은 일이었겠죠? 그가 연기한 수현은 그동안의 이병헌 클리셰를 한 데 모아둔 것 같은 캐릭터입니다. 최민식이 우려와 달리 그의 기존 이미지와 비슷한 캐릭터를 생기있게 그려냈으니 비교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펄펄끓는 용광로 같은 최민식 앞에 클리셰 이병헌은 공허한, 허세의 김지운 액션 외엔 장점이 없어요.


 화끈한 영화를 기대하고 갔는데 조금 실망했습니다. 이미 듀나님의 감상 외 많은 감상을 읽었지만 적어도 내적으로 끓는 게 있길 바랬어요.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굳이 익스플로테이션이라는 긴 이름의 장르를 갖다 붙일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필름 누아르가 그럴싸하게 어울리는군요. 현실이란 바다 아래 심연에서 서로 물어뜯는 두 마리의 피라냐들... 아무 가치 없는 증오만으로 살아가는 두 마리의 짐승. 김지운이 김지운 액션을 포기했더라면, 그리고 한석규가 수현을 연기했더라면, 그래서 조금 늘어지더라도 담백하게 추적만을 그리고 증오를 스크린 위로 바로 내뿜었더라면, 걸작이 되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찬욱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습니다. 최민식만 보더라도 그래요. 잡혔다 풀렸다를 반복하는 몬스터 최민식은 올드보이를 떠오르게 하고,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조금은 능글맞은 사이코패쓰 최민식은 친절한 금자씨를 떠오르게 합니다. 별장씬은 그냥 껌껌한 박찬욱 세계죠. 설겆이를 마친 세정을 장경철이 강간하는 씬은 그냥 박찬욱식 유머입니다. 비교를 아니할 수 없지요. 김지운이 의도했든 안했든 간에 비교는 행해지고, 이러한 비교에서 김지운은 불리합니다. 시네아스트로써 박찬욱은 김지운보다 열 배 쯤 낫거든요. 그건 모두 다 기본적인 영화적 소양에서의 차이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는 김지운의 문어체 대사가 일단 반 쯤 점수를 깎아 먹습니다. 나머지 반은 캐릭터를 다루는 김지운의 태도에 있습니다. 박찬욱은 캐릭터를 만들면 그 캐릭터의 가능성을 끝까지 써먹습니다. 낭비되는 캐릭터가 없어요. 그것은 박찬욱이 섬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캐릭터와 배우를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지운은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증거로 세정이란 캐릭터가 한 번의 섹스 씬과 한 번의 액션 씬으로 어떻게 낭비되었는지 보세요! 김지운의 각본이 아니라고요? 죄송합니다만, 올드보이도 박찬욱 원안이 아니었다고요!


 아쉬움이 큽니다. 차라리 놈놈놈 때가 나았던 것 같아요. 아니 놈놈놈 때의 김지운이 진짜 김지운이었죠. 이번 영화는 김지운과 잘 맞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자면, "김지운씨 섹스와 폭력, 죄와 속죄 따위의 것은 그만 박찬욱에게 맡기세요. 김지운씨는 좋은 상업영화 감독이잖아요. 잘 할 수 있는 건 따로 있다고요!" 앗, 세 마디를 해버렸군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죠, 뭐.



x. 잉여

 이 영화에서 가장 웃겼던 유머는 태주가 손에 박힌 드라이버를 뽑아내는 씬이었습니다. 영화와 잘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유머에 강해요 김지운은... 그니까 박찬욱 유머 따라하지 마시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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