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소설] 내비게이션

2010.09.01 11:32

아.도.나이 조회 수:4707

Keyword : 숲

 

"여기 아까 왔던 곳이잖아!"

 

혜리는 신경질이 난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2시간째 길을 헤매고 있으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저 건너편에는 분명 불빛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도무지 그곳으로 빠져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핸들을 틀어봐도 보이는 것은 온통 우거진 나무들 뿐이다. 혜리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왜 내비를 안 틀어?"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남자에겐 모험심이라는게 있는거다. 개척하고싶은 욕구. 스스로 성취하고 싶은 욕구. 양어장 낚시보다 바다낚시를 선호하고, 안정적인 세단보다 투박한 SUV를 선호하는 것. 그 과정이 도무지 말도 안되고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을지라도 한번쯤 부딪혀보고 싶은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그걸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할 속성이기에 애초에 타협할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혜리는 이제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모양이다.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도저히 안되겠다는듯 꺼져있던 네비게이션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요란한 네비게이션 음성이 카오디오를 타고 흐른다.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GPS 수신상태가 좋지 않아 네비게이션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혜리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핸들을 두세번 움켜잡아야만 했다. 손바닥이 미끄러웠다. 우거진 나무들이 갑자기 흉측하게 일그러진 기형생물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곳은 아직 숲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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