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의 볶음밥,짜장과 회상

2010.09.03 01:28

말린해삼 조회 수:3253

아마, 99년일겁니다. 고등학생일때...;; 약간의 재주로, 학교 교지에 참여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밥을 사주신다며 중국집에 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전 오랫만에 먹는 중국음식이라, 볶음밥을 시켰습니다.(집에서 뭘 시켜먹는걸 안 좋아해서) 볶음밥에 딸려 나온 짜장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놀라는 걸 보고, 오히려 모두들 웃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그 때까지 알던 볶음밥은 불맛이 활활 나고 돼지고기와 야채에, 계란 반숙만 올려진 것이었습니다. 요즘의 미리 볶아 놓고 다시 뎁혀 나오는 거랑은 틀립니다. 오늘 볶음밥을 먹다가 옛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굉장히 굉장히 친하신 화교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중국집을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데이트 때문에 제가 집에만 있어야 할 때는 그 중국집에서 놀고 먹고 자고 했었습니다. 큰삼촌, 작은 삼촌이라 부르던 두 분은 저에게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특히 작은 삼촌이. 90년 초반에 그 시골에서 집에 패밀리가 있는 아이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대만에 갔다 오는 길엔 늘 저에게 이런 저런 선물을 사다 주셨습니다. 그 시골에선 구경도 못할.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국민학교3학년때부터 과외를 했었습니다. 가끔씩 작은 삼촌이 집에 놀러와서 저를 데리고 오토바이에 태워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습니다. 시골이라, 바다도 가고 작은 야산에도 갔습니다. 중국집에 놀러가면 삼촌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늘 맛있는 요리를 해줬습니다. 재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골엔 어디나, 허세를 부리시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제가 국민학교4학년 때, 중국집 카운터에서 미니겜보이를 하는데 밥 때가 됐습니다. 저희 옆 가게의 양복점 아저씨는 허세도 잘 부리고, 멋쟁이었습니다. 가족끼리 외식 나오셨는지, 카운터에 있는 저를 보고 갑자기 큰 소리로,

 

-해삼아! 밥 먹었어? 짜장면이라도 시켜줄까?!!

 

하고 말을 했습니다. 좀 욱하는 성질의 작은 삼촌은 그 말을 듣고 저에게 라조육 반찬에 난자완스 밥을 해줬습니다. 그때 탕수육에 짜장면으로 외식하던 그 가족의 당황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작은 삼촌은 늘 저에게 `나의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의 뽀루뚜까 같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매도 맞고, 욕도 듣고, 공부하고 할 때마다 아버지를 달래고 가끔은 농치면서 저를 데리고 여기저기 오토바이로 달려주던 작은 삼촌. 키도 크고 얼굴도 약간 최민수 +유덕화 닮아서(코가 약간 문제긴 했으나...) 대만에선 모델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대만의 큰 호텔에서 안경을 만드십니다. 몇 년전에, 저희 가족을 찾아와서 저에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음반들을 선물로 주면서 머라이어 캐리와 샤킬 오닐이랑 찍은 사진도 주었습니다.ㅎㅎ..

 

지금은 잘 지내시는지.

아무생각 없이 끼니 때우는 볶음밥을 오늘 먹다가, 삼촌들이 생각났습니다.

늘, 뭐 먹고 싶어. 어디 갈까. 삼촌이랑 자자. 삼촌이랑 오락할래? 등. 당시 솔직히, 삼촌이 아빠였음 했던 적도 있긴 했었습니다.

가끔씩 중국집의 스쿠터를 보면서, 내가 뒷자리도 아닌 저 앞자리에 낑겨 앉을 정도로 작았던 적이 있었구나...싶습니다. 옛날의 기억이나 추억들은 그립습니다만, 가끔씩 머릿 속 서랍에 담아뒀다 꺼내봐야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가 삼촌들 자식들에게도 좋은 삼촌이 되고 싶습니다.

볶음밥을 이 시간에 쳐먹다가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 안녕히들 주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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