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화는 개봉날인 목요일에 봤었습니다.

평일인데도 예상과는 달리 객석이 거의 꽉 찼더라구요. 솔직히 좀 의외였어요. 홍보가 생각보다 잘 됐나봐요.


대충 둘러보니 여성관객이 70~80% 되는 것 같았어요. 웬만한 영화가 다 그렇겠지만..

데이트 커플보단 여성분들 몇몇이 같이 오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관객 반응이 아주 확실하고, 가끔은 지나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이봐요, 그렇게 혐오감을 내비칠 건 없잖아요;;;)

아이가 죽을 때의 관객반응이 가장 극명했죠. 그 이후에 정적.



1.

영화를 보면서 '이끼'의 시골이 생각 났어요.

도시 생활에 실패하고 고립되어 시골에 내려간 사람들. 대안을 찾아 간 건 아닐거예요. 

정말 갈 데도 없고 완전히 지쳐서 며칠 머리나 식히자 하는 마음으로 갔을 텐데 '지옥을 보았다'가 되었죠.

뭍에 내린 지 5분도 안 됐는데 '언제 돌아갈거냐'라고 묻는 시골 대표님 ㅋㅋ 

여기서 빵 터졌어요. 그래도 전 이웃 외손녀고 섬에도 좀 살았다는데 반가운 척이라도 좀 해 주지.


그 밖에 시골 사람들과 친인척 관계로 얽혀서 전혀 제 기능을 못하는(안 하는) 공권력

복남이와 영지의 성장 과정

마을 시스템과 권력엔 찍소리도 못하면서 억눌림을 약자에 대한 폭력과 성욕으로 마음껏 표출하는 남자들

미래도 없고 죽어가기 직전이면서도 욕망만은 끝까지 남아 끓고 있는 것 같은 배경 마을 등등에서도

이끼 생각이 좀 났습니다.


마음에 드는 시도지만 한국영화에서 시골을 묘사하는 새로운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지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2. 

복남이가 아이가 죽었을 때 막 소리 지르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발 구르는 장면이랑

태양을 째려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똑같이 그렇게 되어야겠죠.



3. 

만종이가 지붕에서 일하다가 '역시 마을엔 남자가 있어야 돼'라는 말을 듣고 

분노를 꾹꾹 누르면서 억지로 억지로 일을 마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향후 30년간은 승진할 수도 없고 퇴직할 수도 없고 이직할 수도 없어서

부하직원들한테 스트레스를 다 푸는 과장님처럼 보였달까.. 

그렇다고 만종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는 1그램도 없지만요

복남이가 된장 끼얹을 때 정말 유쾌했어요. 근데 아무도 안 웃어..



4. 

복남이 딸은 영화 처음 나올 땐 그냥 그런 배역이구나 했는데

상당히 입체적이었어요.

엄마가 매 맞는데도 밖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가 준 과일을 먹고

아빠가 엄마 밥그릇 올릴 자리를 치워주니까 자리를 다시 팩 막아버리고

다방레지 뒤통수도 팩 치고..

그냥 버릇이 없는 애구나 했는데 나중에 진상을 알고 다시 생각하니 섬뜩하더라구요.

보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욕망 표출에 자유롭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애였는데

그런데도 나중에 복남이를 위해 같이 도망가주자고 할 땐 찡했는데.....ㅠㅠ


썬크림 바르고 손톱에 매니큐어 바르고 아빠 품에 안긴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움이 느껴져서 그런 제 자신한테 흠칫 기겁했어요. (윽)

이런 연기를 아이한테 시켜도 괜찮은 걸까요? 아역한테는 어느 수준까지 연기 폭을 제한해야 할까요.



5. 

시모가 낫에 죽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시스템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복남에게 가혹하게 굴었던 것에 비해 너무 약한 최후가 아니었나 하는 게 의문이에요.

죽기 전의 허세가 웃겼어요. 

(내가 해녀생활이 몇 년인데~ 너 이제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었다, 뭐 이런..)



6. 

해원을 통한 30대 싱글 대도시 여성의 생태 관찰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예쁘고 옷도 잘 입고 요가도 하고 승용차도 있고 괜찮은 주거환경, 집에는 헬스기구도 있고 

여행갈 땐 엄청나게 큰 명품가방, 시골로 가는 데도 하이힐

냉장고엔 맥주캔이 가득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방어적이고 까칠하지만, 그리고 불친절하지만

이런 정글에서 믿을 건 자기자신뿐인데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수긍도 가요.

...음..쓰다 보니 만종이나 해원이나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구나..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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