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포화 소리와 함께 알록달록한 경주마들이 힘찬 발길질을 시작한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내 말 한마리가 고꾸라지고, 여성 기수 서주희(김태희)는 자신의 말 ‘푸름이’가 안락사 되는 모습을 울먹이며 쳐다본다. 그녀는 휴식을 위해 찾아간 제주도에서 새로운 말 ‘탐라’와 운명의 상대 이우석(양동근)을 만나게 되는데...


이 뻔한 도입부를 바라보면 다양한 예측이 가능해 진다. 영화 [그랑프리]는 서주희라는 여성기수의 그랑프리 제패기를 다룬 스포츠 영화인가? 혹은 시련을 극복하고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을 다룬 휴먼 드라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 가족 영화? 동물 영화?


모두 아니다. 이 영화는 양동근에게 빠지는 초특급 미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마성의 양동근’(?) 시리즈의 최신작이다.(판타지의 하위장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네 멋대로 해라’의 이나영, ‘Dr. 깽’의 한가인에 이어 이번에는 그 초특급 미녀가 김태희라는 사실이 다를뿐. 이 장르의 성패는 김태희의 스타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품에 녹여내는가에 달려있다.


앞서 언급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영화는 서주희가 왜 이우석에게 빠지는 지에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저 서주희가 가장 힘든 시기에 이우석이 옆에 있었을 뿐이고, 이우석은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있는 전직 기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주희는 이우석에게 빠진다. 그것도 심하게 빠진다. 이유가 부재할수록 판타지는 힘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최대 성취는 2 번의 키스신이다. 김태희가 더 적극적으로 양동근에게 달려드는 이유에 대해서 묻는 다면, 당신은 이미 이 장르 팬이 아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아름답고 경쾌하게 판타지를 그리느냐지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외의 잡다한 설정들은 모두 촌스럽고 진부하다. 스포츠 영화치고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너무 부족하고 경기장면들이 너무 안일하게 찍혔다. 휴먼드라마치고는 소재에 대한 진지함이 부족하고, 로맨틱 코미디치고는 진부한 설정들이 넘치는 반면 개연성은 부족하다. 특히 고두심과 박근형의 중년 로맨스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전개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김태희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철저히 김태희의 스타이미지와 긍정적 에너지에 빚지고 있다. 밝고 사랑스러운 여인을 스크린으로 본다는 것이 영화가 뿜어내는 중요한 매혹들 중 한 가지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효과적으로 이 영화를 ‘소비’할 수 있다. 스타 김태희는 당신에게 120분의 소중한 시간과 8,000원의 관람료를 지불할 만큼 충분히 매혹적인가?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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