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아리에티>를 봤습니다. 그런데 동심의 세계를 아주 오래전에 떠난지라 지브리 측에서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부분만 쏙속 보이더라고요.

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그럭저럭 보기는 했습니다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돌하우스 전시회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1. 도입 부분에서 할머니가 쇼우를 집에 데리고 오면서 "피곤하지 않니?" 하고 물었고 쇼우는 "아니에요." 라고 대답했죠. 그런데 차 마크를 보니...

 

-> 그래, 벤츠를 타고 왔는데 웬만해서는 피곤할 일이 없겠지.

 

 

2. 월계수 잎을 따 가는 아리에티 주변을 폴짝폴짝 뛰면서 방해하는 귀뚜라미. 그리고 스피라가 떼서 들고 다니던 귀뚜라미 다리...

 

-> 말이 좋아서 그냥 귀뚜라미지... 일본 귀뚜라미라면 악명 높은 '꼽등이' 아닌가요?

 

 

3. 유럽풍도, 일본풍도 아닌 쇼우 할머니네 집.

 

-> 전 쇼우 할머니네 집의 건축 양식이 참 거슬렸습니다. 그런 무국적 집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많이 볼 수 있지만 쇼우 할머니네 집은 특히 유럽풍이 도드라지게 지어졌어요.  사실 진짜 유럽풍도 아닌 소위 '양식' 건축이죠. 그러면서도 지붕이나 마당의 분위기는 일본의 것이란 말이에요. 그 집의 양식이 가짜 유럽풍 소인들인 아리에티네 가족들과 어울리는 건 사실입니다만 이게 의도된 건지 지브리 특유의 취향인지를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집이 낡아서 그렇지 예전에 그 집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제법 돈이 없으면 가질 수 없는 신식 집이었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쇼우네 집안은 옛날부터 상당히 부유했나 봅니다.

 

 

4. 삐까뻔쩍한 돌하우스...

 

-> 그 비슷한 것을 윈저 성에 갔을 때 봤습니다. 옛날 어떤 여왕에게 선사된 대형 돌하우스가 윈저 성에 있더라고요. 저는 인형에 취미가 없어서 이런 쪽으로는 전혀 모르기는 하지만 인형계는 결코 싼 취미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뭐 싸고 흔한 물건이었다면 여왕에게 선사되었겠습니까? 캐서린 맨스필드의 <인형의 집>에서도 돌하우스는 중상층 집안의 소녀들과 평판이 나쁜 부모를 둔 하류층 집안 소녀들 사이에 사회적 선을 긋는 물건으로 나오지요.

그런데 최소 60년은 전인 증조 할아버지 시대에 저런 돌하우스를 영국에 주문 제작했다라? 질도 꽤 우수한 물건으로 보이고 100% 수제였을 텐데?

 

쇼우네 집은 갑부였던 모양입니다. 할머니 차가 벤츠였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5. 좋게 말하면 본격 채집 경제, 나쁘게 말하면 밤 손님 아리에티네.

 

->  심술궂게 말하자면 이들이 종으로서 존속력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식량을 끊임 없이 외부에서, 그것도 불규칙하게 조달해야 하니 종의 최소 생산 단위인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꽤 어렵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들이 깃들어 사는 집집마다의 거리를 소인족 관점에서 보자면, 바로 옆집간의 거리라도 인간이 마을 몇 개를 오가는 수준의 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꼭 바로 옆집에 동족이 산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러니 옛날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족내혼 하면서 살았듯이 한 집에 사는 다른 소인들과 혼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보아하니 한 집에 한 가족 이상이 살지도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 미래 세대 생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세 번째로 얼굴 맞댄 사이에 대뜸 진지하게 멸종 드립을 치는 쇼우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걸까요? 자기가 죽을 병에 걸렸으면 남한테는 말을 막해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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