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점이 사라진다, 는 것에 대해 처음 피부로 느낀 것은

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 '논장'이 사라졌을 때 였어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의 낮은 독서량/인문사회학적(혹은 다른 여러 교양측면에서의)무관심/온라인 서점의 막강한 경쟁력

이것들 하나 하나가 문제가 되었는데 의외로 '서점이 사라진다'는 데 대해서는 아쉽다-정도의 반응들이어서

조금 놀랐던 기억이 나요.

 

낮은 독서량은 국민성의 문제이거나 영상매체 등 대체오락의 발달로,

인문사회적 무관심은 주로 젊은 세대들의 '무식' 또는 '경쟁현실'의 문제로 논의되었고요.

(인문사회적 관심이 꼭 젊은 세대에게만 기대되어야 할 덕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가지는 직접적으로 서점이 사라진다는 이슈와 연결되기 보다는

때 되면 연례 행사처럼 OECD 독서율 발표때 잠시 나왔다가 잊혀지고

대학생들 무식하다, 하고 술안주처럼 씹히고 씹힌 문제라 이제는 임펙트도 약해진 것 같아요.

 

편리함과 높은 할인율/마일리지로 무장한 온라인 서점의 약진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행태-라는 말로,

오프라인 서점들이 온라인 서점의 할인율에 제동을 걸었을 때도 되레 오프라인 서점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오프라인 서점의 이기주의라면서 말이죠.

 

 '책이 사라진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주로 다뤄졌던 것 같은데

전자책의 등장이라든가, 꼭 낮은 독서량과 무관심 같은 부정적인 이유보다

기술의 진보라는 일단은 긍정적(이라고 평가되는)  요소가 이미지상으로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물론 아날로그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있지만요.

 

논장이 사라진게 2004년이고 6년 지났어요.

동네 뒷골목에 있던 이음책방은 아직 운영이 되고는 있지만

처음 문을 열었던 대표님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책방을 떠나셨죠.

이건 2009년 말 일이고요.

 

그 때도 사라져가는 사회과학 서점들에 대해서 말들이 있었어요.

모두가 안타까워 했었죠. 하지만 서점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은

온라인 계정의 마일리지가 사라지는 안타까움보다 약했던 거예요.

옳다 나쁘다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당연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2.

 

풀무질은 성균관대 구내 서점이 되기 위해서 몇 년이고 계속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어요.

학교 구내서점 운영하는 곳이..29만원으로 유명한 거기였던가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

결국은 돈 문제죠. 가난한 사회과학 서점으로서는 학교가 요구하는 자릿세를 낼 수 없었던 거예요.

규모가 작으니, 모르긴 몰라도 운영시스템이나 그런데서도 차이가 났겠지요.

 

일부 학생들은 풀무질이 구내 서점이 된다면

리어카로 책을 다 날라주겠노라고 약속까지 했는데 소용이 없었죠.

 

저는 풀무질을 좋아했어요.

책을 사건 안 사건 자주 들러서 아저씨랑 수다도 떨고 그랬는데

특정 시기 정부가 서점을 감시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도

대안학교라든가 대안화폐라든가 지율스님에 대한 얘기도 모두 흥미로웠어요.

 

어느 날인가는 수중에 돈이 딱 만원밖에 없었는데

그림책이 너무 너무 보고싶어서

무작정 아저씨한테 가서 만원짜리 그림책을 달라고 했더니

'나의 서양미술순례기'를 꺼내 주셨어요.

 

만원 있으면 만원, 이만원 있으면 이만원 가지고 가서

아저씨 재미있는 책 좀 주세요 만원 있어요 라고 하면 됐던거죠.

물론 제가 보고싶은 책을 골라오는 경우가 더 많기는 했지만.

 

책을 사면 항상 직접 쓴 글을 책에 끼워주시는데

주로 생명/생태, 평화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글이 많았어요.

제 취향보다는(?) 온건한 글들 이었죠.

그거 모아두기도 했는데 이사하면서 아깝지만 버렸어요.

 

취직을 하고 이사를 하면서 자주 못 들리게 되었는데

어느 날 보니 맞은 편 지하로 이사를 했더군요.

장소는 넓어졌지만 마음은 좀 안 좋았어요.

한쪽에 쇼파랑 테이블로 자리를 마련해 놓고

이제 여기서 사람들이 책도 보고 쉬었다 가고 토론도 하게 할 거라고 자랑하셨어요.

 

참, 언젠가 들렀을 때 들었는데 콘서트;;도 하더군요.

직접 가보지를 못해서 그 공간에서 어떻게 콘서트를 한다는 건지 상상이 안되지만.

 

여기서 책을 사면 주는 쿠폰은 김귀정 생활도서관에 기증할 수 있었는데

저는 그냥 새 책으로 바꾸느라 다 썼죠. 한 번인가 밖에 기증 못했어요.

 

3.

 

저는 그냥 서점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냥 그 공간을요. 책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고.

 

논장이 사라지고 서점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뒤로

일부러 온라인에서 사고싶은 책 목록을 적어서 풀무질에 가서 사곤 했어요.

선물도 책을 할 때가 많았고 이사하고 나서는 거의 못 들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 동네에 가면 꼭 들러서 한두권씩은 사서 나오죠.

 

아마 큰 도움은 안되었을거예요.

어차피 저도 주 목적은 제가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는 것-즉 저를 위한 소비행위 이니까요.

다만 그건 어떤 원칙 같은 거였어요.

집에 TV가 없는데도 TV 수신료를 일부러 계속 내고 있는 것처럼.

저는 이런 저런 사소한 원칙들이 모여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 주고 좀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온라인 서점에서 보다 싼 값에 책을 구입하는 것도 효율적인 일이고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예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곳을 다 이용한다고 생각해요.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풀무질 은종복 아저씨가 학보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큰 책방이나 인터넷 책방에서는 상업적 관계로 판매자와 소비자가 맺어지지만

사회과학 책방은 대학 앞의 작은 토론과 사랑의 진보 공동체로 살아 있어야 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과학 책방 아니면 또 어때요.

동네 책방은 지역이나 마을의, 아이들과 주부들, 어르신들의 커뮤니티 공동체로 살아남기를 바래요.

 

과거 사회과학 서점들이 학생들의 연락망으로, 약속 장소로, 토론 장소로

어떤 '거점'으로 기능했던 것처럼 비록 그 성격은 바뀌게 된다고 할지라도.

 

내가 가진 '서점의 좋은 기억들'을

-비좁은 책상 사이에서 책을 보던 시간, 우연히 발견한 책이 좋았던 기억, 

오랫동안 찾았던 책을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 기쁨, 용돈을 모아서 마지막 권을 샀어! 그런 순간의 기분들을

오래 지켜나갔으면 좋겠어요.

 

아직 문제지전문점이 되지 않고 꿋꿋한 동네 서점이 있다면

그냥 책을 사는 장소가 아니라 지키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장소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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