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연필깎이, 커피...

2010.09.28 01:16

AM. 4 조회 수:2616

연필깎이, 샤파, 연필깎는 칼

 

저희 양친도 선생님이셨는데요. 저희 부모님도 샤프는 못 쓰게 하셨어요. (01410님과 ) 같은 이유였죠.  그런데 연필깎이는 사주지 않으셨죠. 이유는, 자신이 쓸 연필은 자신이 매일저녁 책가방을 준비하면서 직접 깎아 써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1학년 때에는 어머니가 손수 매일 저녁 신문지를 깔고 연필을 가지런히 깎아 주셨지만 그 후부터는 제가 직접 깎아 써야 했습니다.  물론 깎지 않고 써서 뭉툭해진 연필을 들고 숙제를 할라 치면 혼이 나곤 했지요. 그래도 깎아 주시거나 연필깎이를 사 주지 않으셨어요. 많이 졸랐지만 소용없었죠.

그 시절 제 필통 속에는 늘씬하게 깎여진 연필들 대신 울퉁불퉁 못난이 삼형제처럼 상처투성이 연필들과 까만 손잡이가 달린 칼이 들어있었죠.

 

"너네 집엔 연필깎이 없니?  부모님이 안 사주셔?"


그래선지 전 그 샤파에 로망이 있어요.

친구들 집에 가서 숙제를 하며  친구의 연필깎이를 보면 다른 것보다도 샤파가 제일 멋졌고 가장 성능도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연필깎이로 연필을 다듬는게 일이었죠.  전동연필깎이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전 그게 조절하기 어려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사무실에 샤파는 비록 아니지만(?) 오천원이면 살 수 있는(!) 연필깎이가 두 대 있습니다. 누군가가 집에서 가져온 거래요.
성능도 꽤 괜찮아서 깔끔하고 날렵하게 깎입니다. 전 지금도 메모할 때 연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연필깎이를 손으로 돌려보고 싶어서예요. 하루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죠.

 " 나 아무래도  이거(연필깎이) 돌리는 거에 희열을 느끼나봐~"

 

01410님과 비슷하면서 다른 기억이라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고 그래선지 글이 길어졌네요~

 

 

*  *  *

 

 

일요일 밤에 커피가 똑 떨어진 걸 알았죠. 사실 며칠 전부터 (퍼먹던) 커피가 다 떨어져서 찬장 구석에 박혀 있던 초이스1회용커피로 연명하는 중이었는데 말이죠.

집에서 먹는 커피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친척어르신이 들고 오신 금빛 포장의 헤이즐넛향 인스턴트 커피입니다.(이름을 외우지 못하는데 봉지 들여다보기 귀찮군요)

처음 먹었을 때 너무너무 맛있어서 아버지를 졸랐고, 아버지는 딸래미가 커피에 열광하는 걸 아시는지라 남대문수입상가에서 그 커피를 사다 나르기 시작하셨죠.

 

집에서 남대문 가는 것이 동네슈퍼 가는 것처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지라 지금 같은 경우엔 걍...집에 숨어 있는 커피를 발굴해서(?) 먹습니다.

그러다가  일요일에 발견한, 플라스틱 젓갈통에 들어 있는 정체불명의 원두커피가루!

 

신난다. 음 향도 나쁘지 않은데?

 

밥숟가락으로 두 숫가락을 듬뿍 덜어서 드립퍼로 내려 먹어봤습니다.

 

뭔가....이상하다.

 

그건 몇 년 전 옥*을 통해 구매했던 이과수 커피였습니다.  개봉해서 먹어봤는데 영 맛이 없어서 못 먹겠고 그렇다고 새 커피를 버리기는 아까우니 마침 비어있던 젓갈통에 부어놓고 찬장 깊숙~히 찔러 넣었던 거였어요.

 

더 기막힌 건 이 커피를 전에도 똑같이 드립해서 (역시 원두커피인 줄 알고)  먹었었단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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