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먹는거 말고)에 대하여

2010.09.30 10:02

DH 조회 수:1964

1.

 

얼마전 있었던 태진아 부자 vs 최희진의 싸움은 지금 끝난건가요?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정보는 결국 임신이네 뭐네 했던 것이 모두 최희진의 거짓말이었던 걸로 드러나서 태진아측이 참다 못해 법적 조치를 진행하기로 했다 까지인데 말이죠. 여하튼, 이 사건이 한참 시끄러울 때 최희진측은 "태진아측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식으로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전 "정말 최희진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악수를 뒀다. 형사고소 해서 집어넣던가, 민사소송을 해서 손해배상을 받는 식으로 진행하는게 훨씬 나았을텐데. 망신을 주고 싶었다면 그렇게 소송만 해도 연예기자들이 알아서들 보도하지 않았겠나? 그렇게 공개적으로 떠들어버려서 오히려 본인이 명예훼손으로 들어갈 상황만 만들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가 그러더군요. "그런데 말이야... 정말 그거밖에 없나? 최희진이 본인 말처럼 돈도 필요없고, 태진아를 교도소에 보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정말 사과를 받고싶다고 하면 뭐 방법이 없나?"

 

"그건 20년전에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끝난 이야기야. 아무도 누구에게도 사과를 강제할 수는 없어. 교도소에 가기 싫어서, 돈 내기 싫어서 사과 하고 끝내겠다는 사람은 있겠지만, 교도소에 가도 좋고 돈을 내도 좋으니 사과는 죽어도 못하겠다는 사람한테 무슨 수로 사과를 하라고 하겠어?"

 

생각해보면 해당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기 전에는 법원에서 특정인에게 "누구누구에게 신문광고로 사과하라"고 명령했다는 뜻인데... 굴욕이네요.

 

2.

 

그 사건과 헌법재판소 결정이 생각난 것은... 얼마전 음식점에서 겪은 일 때문입니다. 음식점에서 일행과 종업원간에 마찰이 있었는데, 일행은 항의의 의미로 시켜놓은 음식이 나오기 전에 그냥 일어서서 나가버렸습니다. 주문한 음식의 일부가 나온 상태였는데, 먹은 것만 계산해주고 나머지는 못내겠다는 거였죠. 계산을 하면서 카운터의 주인에게 "당신에 종업원이 이러이러한 말과 행동을 해서 내 기분이 상했다. 기분 나빠서 못먹겠다. 종업원 관리 좀 제대로 하라."고 항의하는 것까지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기분나빠서 못참겠다. 종업원 데려와라. 사과 받아야겠다."로 진도가 나가니 좀 난감하더군요. 결국 종업원이 불려왔고 죄송합니다, 라고는 했는데, 사실 누가 봐도 전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었어요.

 

"그런 사과를 받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리고 종업원에게도 양심의 자유가 있는데 만약 본인이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했다면, 들이받아버리고 관두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장의 눈치가 보여서 본인 양심과 상관없이 그냥 사과해야 했을 것이다. 그 음식점을 다시는 안가거나, 내친김에 대놓고 불매운동을 하는 것도 이해하겠는데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느냐."고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흥분한 상태라서 관뒀어요. "그래서,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라는 버럭!도 당하고 싶지 않고.

 

3.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사과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나요?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말 한마디로 천냥빚도 갚는다"며 먼저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데에 반해, 미국에서는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나중에 소송에서 불리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한게 있어도 함부로 사과해서는 안된다는 말까지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2번 내용의 일행이 좀 이해가 안됐어요. 차라리 서로 대등하게 맞붙을 때가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지, 상대방이 강요에 의해서라도 "죄송합니다"라고 해버리면 거기다 대고 더 떠들면 오히려 본인이 악역이 되어버리잖아요. 가끔 보면 그냥 사과로 넘어가서는 안될 것 같은 일도 그냥 사과 한 마디 하면 그 순간부터 "이해 안해주는 사람이 쫌생이"가 되는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특히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라거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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