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기분일때, 영화관을 찾게된다면 시끌벅적하고 때깔좋은 영화보다는 작고 사람들이 덜 찾을것 같은 영화를 택하는게 좋은 선택일때도 있습니다.

간혹 이런 선택중에서 의외의 슬리퍼 히트작을 발견한다던가 하면 운이 좋은거고요. 

육상효 감독의 영화 방가?방가!는 역발상에서 출발하는 원조크 코메디입니다.



(대한민국에 부탄사람은 단 세사람 뿐이야! 첫번째 부탄대사,두번째 그 마누라! 그리고 너!)


수년째 취업을 못하던 백수건달 방태식이 동남아 노동자 우대라는 광고전단을 보고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부탄인 방가로 변신하여 외국인 노동자틈에서 일하게 된다는 이야기죠.

인종적 다양성을 자랑하는 나라에서는 흔한 코메디 소재였지만 단일민족 국가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에서는 드문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더이상 '단일민족'으로 유지 될 수 없는 나라이며 더이상 '외국인'이 금발머리의 푸른눈을 가진 '미국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는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덜컹거리는 만듦새와 통제 되지 못한 연기들에 불만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외치는 '우리에게도 아시아라는 이웃이 있었어요.'라는 수줍은 외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옆나라인 일본을 섬나라라 부르며 경멸하고 있었지만 섬나라이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륙과 연결되는 육로는 적국인 북한으로 가로막히고 드넓어 보이는 남해도 태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영해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야하는 좁은 해로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근대화 이후에도 좁은 섬나라로만 지냈고 한국 이외의 나라는 모두 '먼나라'였을뿐 '이웃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외톨이로 지내던 나라였기에 기회를 찾아 온 이웃들을 '동남아 거지새끼들'로 밖에 못불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를 가져 본 적이 있었어야말이죠.

이야기가 좀 다른곳으로 새는 감이 있는데, 영화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음...솔직히 말할게요.


영화 못 만들었어요.


시나리오는 전체적으로 덜컹대고 끝으로 가면 신파로 흘러가는 한국 코메디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그대로 답습합니다.

재능있는 김인권 같은 배우와 새로운 발견이라 할 만한 김정태, 신현빈 같은 배우들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제되지 못한 연기로 영화의 흐름은 뚝뚝 끊깁니다. 만약 감독님이 제 옆자리에 있었다면 '저 장면은 어쩌자고 저렇게 찍었어요?' 라고 묻고 싶은 장면이 한두군데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 한 대로 여전히 이 영화에대한 인상이 좋은 이유는 그 수줍음과 낙천성에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인권은 어느 영화,드라마에서든 맡은 역을 늘 성실하게 연기했던 배우입니다. 

제가 아직도 인상깊게 여기는 그의 연기는 메디컬 센터라는 드라마에서 진료차트였는지 엑스레이 필름이었는지를 잃어 버리고 화장실에 주저앉아 문짝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입을 막고 우는 연기였습니다. 정형화된 연기 같지만 앞뒤 흐름을 고려 할때 '굉장히 영리한 연기를 하는 배우구나' 라는 감탄을 했었죠. 사실상 원톱주연으로  의욕넘치는 연기를 펼쳐 보이지만 (네, 정말로 의욕이 스크린 밖으로 넘쳐나는걸 느낄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가지치기가 제대로 안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건 연출자의 책임으로 돌아갈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에서 온 '장미'역의 신현빈은 솔직히 크레딧에서 신현빈이라는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 할 정도 였습니다.(에? 진짜 베트남 배우가 아니었어?)

단순히 한국말 하는 베트남 노동자의 캐리커쳐를 그리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부탄가스 방가'가 느끼는 애틋한 연정의 대상으로 설득력 있는 모습을 부여해 줍니다.(죄송합니다. 제가 아오자이 입은 미녀에게는 좀 관대한 편이라서 평이 후해요.) 프로필을 찾아보니 이번이 데뷔작이더군요.


(자, 설득력 있습니까?)

방가?방가!는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그만큼 많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흐름이 좋지 않고 개그도 덜컹대고 많은 가능성을 놓쳤어요.

그래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한국의 이웃들에게 수줍은 인사와 그간의 무례에 대한 사과의 제스쳐를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영화였다면 그 의도는 보기 좋아요.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늘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시작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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