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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보고 싶은 영화들로 시간표를 짜다보니
해운대와 남포동을 왕복하는 비극이 두 번이나 생기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남포동 왕복하는 날에는 하루 4편이 아닌 3편만 보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널널해져서 남포동 오는 길에 한 생각:
"아 역시 여유있어, 남포동 롯데 백화점에 가볼까? 아니 역시 자갈치를 가봐야지.
출발하기 전에 시립미술관 들러서 부산 비엔날레를 보고 올 걸 그랬나?"

 

하지만 남포동에 도착하고 나서 저의 머릿속:
"이 커피숍에서 몰래 자면 직원한테 혼나려나..."

 

첫회 영화인 아웃레이지가 9시 30분이었던 덕분에 일찍일어나야 했다는 비극.
다시는 첫회 영화 이렇게 빨리 안잡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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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레이지 평이 하도 안좋길래
기타노 아저씨 교통사고 후유증이 세월을 지나 이제서야 나타나는 것인가했는데,
(아님 교통사고로 천재가 된 머리가 이제 정상으로 돌아오는 건가...?)
음...? 전 영화 좋기만 하던데요?

다들 독특하고 잔인한 영화를 기대했든가,
아니면 뭐 대단한 아트하우스 무비를 기대했던 걸까요?
그냥 기타노 다케시 분위기 나는데 살짝 기성품스러운 야쿠자물.

등장인물중에 착한편은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불쾌하거나 이죽거리는 게 아니라
적당히 감정이입도 하고 적당히 관조적으로 보기도 하면서 지켜볼 수 있는 액션이었습니다.

캐릭터들이 개성있어서 좋았어요.
영리하고 약싹빠른 애 몇 명, 우직한 애 몇 명, 엉뚱하게 당하는 애 몇 명...
기타도 다케시는 그 중 한 명으로 나와서 적당히 비중있지만 주인공은 아닌 캐릭터였구요.
특히 몇몇 "동네 아저씨스러운" 야쿠자들은 언젠가 일본 목욕탕에서 보았던,
온 몸에 문신하고 사투리로 웅얼거리던 동네 야쿠자 아저씨가 연상되어서 웃음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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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개막식.
레드 카펫의 스타들을 직접 볼 기회...
...라고 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저 멀리 콩알만하게 밖에 못보았죠.
그래도 tv에서 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스크린에 비친 걸 봤으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인기는 역시 원빈.
중간에 자리에 앉은 스타들 한 명 한 명 보여주니
관객들이 "원빈! 원빈!"을 외치더군요.
그러나 쉬크한 카메라 감독님은 끝까지 관객들의 희망을 밟아버렸다는.


왠만한 스타들은 다 박수갈채를 받았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해외 게스트가 등장하면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박수를 보내주는 훈훈함도 있었구요,
그 중에 원빈 다음으로 반응 좋았던 스타는 김윤진이었고,
치마를 허벅지까지 쫙 찢은 몇몇 배우들의 드레스를 비출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었구...
아, 유인촌은 안성기와 함께 입장하더군요.
야유를 받을까봐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걸까요.

 


본래 개막식 표도 없었고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운이 좋아서 공짜표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예매 전쟁에서 광클하고도 못보신 분들께는 진심으로 죄송.
하지만 저라고 지난 십수년의 부산영화제 역사를 거치면서
보고 싶어 미치고 팔짝 뛸 거 같은 영화를 간발의 차로 놓친 게 한 두번이겠습니까.
표라는 게 다 돌고 도는 건가봅니다. (내가 뭔소리 하는 거지? 졸리니까 이해해주세요.)

 

산사나무 아래는 장예모가 오랫만에 힘빼고 만든 영화라길래
아주 엉성하고 작은 영화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중간 규모의 영화랄까...
영화 속에 뭐 대단한 역사적 사건이나 스펙타클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문화혁명 당시 도심 풍경이나 시골 풍경이 꽤 멋드러지게 그려집니다.
소규모 저예산 영화라는 생각은 안들더군요.
이거 전에 만들었다는 블러드 심플 리메이크(삼창박안경기)쪽이 더 궁금했는데,
보고나이 그 영화보다 이쪽이 더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기도.

 

중반까지 젊은 남녀가 알콩달콩 연애질을 하는데,
상황상 몰래 해야 하는 연애이다보니 남자애는 꼭 "허락받은 스토킹"을 하는 것같고
정말 스토킹에 가까울 정도로 적극적인 대쉬를 하더군요.
여자애는 그런 남자애 때문에 좋아서 죽을라고 하구...
스크린에서 염장질해대는 게 귀엽고 웃깁니다.
그러던 영화가 중반에 살살 복선 좀 깔아주더니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떤 장르로 변합니다만,
연출이 질질 끌지 않고,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끌어가기 때문에
이런 장르 영화들이 그런 것 처럼 짜증스런 통속성의 함정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정도로만 이야기해도 어떤 장르를 말하는 건지 눈치챈 분들은 눈치채셨을 듯. 더이상은 입 다물께요. :-)


중간중간 상황설명하는 자막들이 좀 사족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자막 자체는 담백하니 좋았지만
그걸 굳이 구어체로 번역한 한글 자막 때문에 어색했던가 싶기도 하고...
아니 그렇다고 번역이나 자막 어투가 나빴다는 건 아니구요.


장예모는 여전히 연출력 훌륭하시고,
젊은 배우들 발굴해내는 능력도 뛰어나시더군요.
본래 중국에서 주목받던 젊은 배우들인지 생짜 신인분들인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중국영화 팬들은 잘 아시는 배우인데 저만 모르고 이러는 건 아니겠죠?)
남녀 주인공 모두 영화 시작전 무대인사 할 때 외모와 태도만으로도 반응이 좋았고
("부산와서 하고 싶으신 일 있나요?" "불고기가 먹고 싶어요")
영화를 보고나니 호감도가 더 올라가더라구요.
특히 여배우를 보면 장예모가 선호하는 여배우의 외모 계보도랄까...
아주 살짝 신인 시절 장쯔이가 연상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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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불고기 이야기하고 나니 드는 사소한 궁금증.
외국 사람들이 한국 와서 먹고 싶어한다는 그 "불고기"는
우리가 먹는 그 불고기를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갈비나 매운 양념 구이들까지 포함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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