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2010)

2010.10.18 13:23

DJUNA 조회 수:15120


오감을 뒤흔들고 정신과 감정을 지배하는 신비스러운 능력을 가진 음식의 판타지는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아마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쉽게 정량화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죠. 영화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인기입니다. 예상 외로 다루기 쉬운 분야이기도 해요. 위대한 회화나 음악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면 그 위대함을 직접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음식 영화에서는 배우들을 동원해 그냥 맛있다고만 해주면 되니까요.


이서군의 [된장]에서 그 신비스러운 음식은... 된장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된장찌개죠. 탈옥 5년 동안 경찰을 피해 달아나왔던 살인마가 경찰이 자길 덮치려는 것을 알면서도 누가 만들어놓았는지도 모를 된장찌개를 퍼먹고 있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방송국 PD 최유진은 그 뒷이야기를 취재하러 나가는데, 그러는 동안 그 된장찌개를 만든 장혜진이라는 여자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됩니다. 


영화는 [시민 케인] 스타일의 미스터리로 시작합니다. "그 때 된장찌개를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사형수의 마지막말은 이 영화의 로즈 버드죠.  처음에는 맛집 이야기나 어린 시절의 향수로 쉽게 풀릴 줄 알았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전개는 확실히 관객들의 시선을 끕니다. 코미디, 드라마, 모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뒤섞는 장르 혼합의 시도 때문에 영화가 약속하는 미스터리가 더 커보이기도 하고요.


최 PD가 밝혀내는 이야기는 [된장]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토속적인 분위기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장혜진은 한참 젊고, 이 사람과 로맨스로 얽히게 되는 청년 역시 젊습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배운 천재들로, 과거나 구세대에 그렇게 얽혀 있지 않습니다. 이서군은 된장이라는 소재에서 익숙한 이미지와 고정관념을 벗겨내어 보다 젊고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만들려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인다고 해도, 장혜진의 이야기가 별 재미가 없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최PD는 상사가 자기 이야기를 어린 시절의 향수나 불륜 이야기로 몰고 가려고 할 때마다 진부하다고 투덜거리는데, 과연 장혜진의 이야기는 그 진부함에서 벗어나 있는지요. 제가 보기에 이 이야기는 거의 몇 년 전 유행했던 드라마타이즈 뮤직 비디오들만큼이나 진부한 신파입니다. 


보도자료엔 제작자이며 공동각본가인 장진의 이름이 먼저 뜨는데, 그래도 [된장]은 이서군의 비중이 더 큰 영화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영화의 짜임새는 장진이 감독 이름을 걸고 만든 영화들보다 더 좋아요. 더 잘 다듬어졌고 영화적 아이디어도 풍부합니다. 이 아이디어들이 보다 독창적인 이야기와 결합되었다면 더 좋았겠죠. [된장]은 약속했던 신선한 무언가를 줄 수 있을만큼 용감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기엔 몸을 너무 사리고 있어요. (10/10/18)



기타등등

사형집행이 부활하는 걸 영화 속에서만 몇 번째로 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감독: 이서군, 출연: 류승룡, 이요원, 이동욱, 조성하, 다른 제목: The Recip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The_Recip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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