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꽃향기를 맡으면 님이 올리신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직장 동료에 관한 글들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읽기엔 늘 익숙한 모습의 동료가 보여준 새로운 스타일과 행태에 대한 일종의 낯섦에서 오는 거부감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작 당사자에겐 말할 수 없어서 듀숲 비슷하게 게시판에 올리신 글일 것도 같은데, 오해와 반감을 부를 만한 어휘들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띄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그 글에 따른 긍정적 부정적 댓글들도 흥미로웠구요.


  어떤 상황인 지 조금은 익숙한 건, 저의 경우도 최소한 3~4회 또는 숱하게 들었던 외모나 옷차림 관련 발언에 대한 기억이 나기도 했고 그때 내 기분이나 감정 또는 상황이 어땠는지 떠오르기도 하고 그랬네요. 영화 '화양연화' 를 봤을 때,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치파오를 날마다 갈아입고 나오는 장만옥이 퇴근 후 밤길에 국수를 사러 나가는 장면이 느리게 지나갈 때, 그니의 튀동수에 따라붙는 듯한 한글 자막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 정확할 거에요.


  "매일 저렇게 차려입고 다녀?"

 

  사람이 눈이 달린 이상 타인의 외양을 보고 무감하기란 쉽지 않기에,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저부터 타인들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전제하고 저 역시 마찬가지로 참 잘도 관찰하고 훔쳐봅니다. 대놓고 빤히 보는 건 당연히 예의가 아니고, 사실 또 그렇게 대놓고 넋을 잃을 만큼의 매혹적인 미모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은 또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는 그래요. 전날 잘 익은 김치에 쏘맥 좀 과하게 말았다 싶으면 냉장고에 얼려둔 숟가락으로 아침부터 눈두덩이를 한참 눌러주는 일부터, 그날그날의 화장이나 옷차림 같은 거 그에 맞는 가방들 구두들 액세사리들, 대부분은 전날 밤에 다 갖춰놓는 편인데 그때마다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싶으면 누구긴 누군가요, 저 자신을 위한 첫번째 긴장이죠. 제 눈에 딱 갖춰져야 출근길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타인들의 시선에서 나오는 평가는 덤일뿐. 하지만 저도 그런 말을 듣고야 말았어요.


  "왜 늘 옷차림이 결혼식 하객 복장이세요?"


  집요하게 제 외모나 옷차림을 관찰하고 비슷한 류의 질문을 던지는 이가 회사에도 여럿 있어요.   
왜, 맨날 하이힐을 신으세요? 왜 맨날 향수를 뿌리세요? 왜 맨날 네일케어를 받으세요? 등등등...


  이젠 정장이 편한 나이가 되었고(그리고 진짜 결혼식 하객패션 같은 옷은 정장이 아니라, 집안 옷장에 다 걸려있으므로) 정장차림에 플랫은 제 기준에서는 도저히 용납 안되는 매칭이라, 향수는 겉에 입는 마지막 속옷 같은 거라서, 잡다한 집안 모든 일들 다 마치고 난 일요일 저녁 네일샵에 두 손을(또는 두 발을 맡기고) 멍 때리며 나를 맡겨보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그 정도는 호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이 있고, 또 그러기 위해 빡세게 일하고 있으니까... 이런 얘기들 일일이 다 해 본 적은 없네요.


  왜냐하면 내 신체에 가하는 내 모든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부모자식형제부부사이라도 그런 지적질은 월권이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갖고 있고, 남이 하는 그런저런 말들 사실은 웃기고 귀찮기 때문이지요. 혹시라도 힐소리가 거슬릴 수도, 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아프다거나 관리받은 손발톱에 역겨움을 느끼지만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런 부분 감안하여 최대한 배려하고 조심하며 지내는 제 노력을 쓰자면 제 꾸미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가 신경쓰는 부분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저는 관대한 편이에요. 저라면 회사안에서도 신지 않지만 더욱이 밖으로는 한 발자국만 나간다 해도 도저히 신을 수 없을 것 같은 삼선쓰레빠를 아무렇지 않게 신고 돌아다니고 겨울이면 지급되는 회사로고가 새겨진 두툼한 솜잠바 안에 어제 입은 옷을 오늘 입고 내일 또 입는다 한들 저는 그러려니 해요. 사실 따지고보면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보다, 회사가 무슨 동아리방도 아닌데 너무 프리하고 캐주얼한 차림으로 활보하는 직원들이 더 지적받아 마땅할 법도 한데 대부분은 후자들이 뭉쳐 전자를 뒷담화 한다는 게 아이러니지요. 그래도 저를 바꿀 생각은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해왔습니다만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어쩌면 저더러 사치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돌려 말하는 걸까요?


  단지 질투나 시샘(설마!)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뿌리 깊은 인식과 개념의 차이인 지, 정말 취향의 차이가 너무 확연해서? 아니면 경제력 또는 투자를 어디에 하느냐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 그건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는 하고 싶으면 하고 사고 싶으면 사는 것입니다. 이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화감이 느껴질 수 있는 지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다한들 제가 연예인이나 힐튼 만큼 하겠습니까?) 자신의 욕망을 알고 인정하고 그렇지만 그것을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맘껏 발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꼭, 꽃향기님을 겨냥해서 쓰는 건 아니지만, 저는 자신의 눈에 좋아보이고 새로워보이는 타인의 것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부러움이든 동경이든 뭐든 그 부분에 솔직하지 못하고 유연하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피해의식은 일종의 게으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중요한 건 저와 다른 유형의 인물들에 대한 해석 또는 분석이나 제 안에서의 감정이 부정의 형태로 출렁일 때는, 그것이 특히나 동성간에 외양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게 얼마나 민감하게 작용하는지 제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그냥 마음의 소리로만 담아놓습니다. 또한 설사 그게 칭찬의 형태라고 해도 꽃노래 삼세번이라고 좋은 의미를 액면 그대로 좋게만 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도 알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그게 뒷탈이 없었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저 스스로 몸과 정신을 아무리 관리하고 단속해본들 남이 봤을 때도 저에게 이상하고 재섮는 포인트가 최소 한 두개는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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