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란 가능한가?

2010.11.19 12:26

해삼너구리 조회 수:2483

다들 stardust님의 글에 대한 반응이 핸드백으로 기우시는 와중에 저는 혼자 소비에 대해 곱씹어보고 있었습니다. 

안녕핫세요님의 글 아래 24601님과 HARI님이 댓글로 의견을 나누시던데요. 저는 양자 모두 이해가 되네요.


일단은 윤리적 소비란 게 대체 뭘까요? 

흔히 생각하기로는 공정무역제품이나 친황경제품의 사용, 불매 등의 소비자운동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게 과연 정말로 '윤리적인' 선택일까요? 

혹은 소비에 대한 우리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면죄부에 불과하지는 않은지요? 


불매운동은 저도 개인적으로 꽤 긍정하고 있고, 직접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대기업 위주로 왜곡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개 소비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불매를 선택하는 경우를 보더라도

어디 회사 제품을 사봤는데 서비스가 형편없더라 다시는 거기 물건 안 쓸란다 하는 사적인 동기에서부터

어디 기업은 노조도 없다더라 그런 악질 기업 물건 사서 한푼이라도 돈 보태주고 싶지 않다까지

윤리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이고 정치적 선택에 가깝겠지요. 


공정무역제품이나 친환경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면 당연히 사용하면 좋지요.

그렇지만 당장은 SPA 브랜드에서 옷 사입기도 빠듯한 형편에 그런 제품 때문에 희생된 동남아 노동자까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얼마나 있는가요? 

할인마트의 예를 들어볼까요? 

대기업 위주의 대형 할인점이 재래시장과 소상인, 그리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아무리 들어도

당장은 주차도 가능하고, 카트도 끌고 다닐 수 있고, 가격 비교도 가능하고, 소액 건에 카드 써도 뭐라고 하지 않는 대형마트가 편한걸 어떻게 해요.


어떤 경우에 소비에 대한 대안 중에 하나로 선택할 수는 있어요. 

기왕 커피 사먹는 거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원두를 선택하면 좋겠지요.

그런데 집앞 카페에서 공정무역이 아니지만 맛있는 원두를 파는데 굳이 삼십분 걸어나가서 공정무역 원두, 잘 안 사게 되지요.

그나마 삼십분 걸어나가서 살 수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면서 그냥 신선한 원두 구하기도 어려운데 공정무역?? 

점점 현실성 없는 소리가 되고 말죠.

현실적으로 대안은 굉장히 협소하고, 그나마도 어쩐지 좋은 일 하기 위해 물질적으로 약간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됩니다.


윤리는 강요할 수 없는 거에요. 

그건 그냥 사회적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모두가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 권장되는 최소한의 어떤 내부적 지침 같은 건데요. 

어떤 개인이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공공의 선을 위한 어떤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물론 좋은 결정이에요.

그렇지만 그 개인이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하는 타인에게 자신의 선택을 들이대고 짠소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제였던가요. 채식 말이 나왔을 때 채식을 강요하는 회사 사장 이야기 하신 분이 계셨지요. 비슷한 이치.


그보다는 소비가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대형 할인점에서 물건을 구입했을 때, 그게 당장 편하고 좋아보여도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오는가, 그 구조가 파악되면

아 그 우선 편한 게 다 좋은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되죠.

혹은 대형 할인점이라고 써붙여서 싸다고 생각했는데 따져보면 별로 싸지도 않네? 이런 걸 깨닫게 되면 할인점 더 이상 안 가게 되죠.


사회적으로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을 깨닫고, 물건을 사는 게 내가 권리를 행사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얽매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까지 갖게 된다면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데에는 더 없이 좋겠습니다만, 한때 리브로 게시판이라고까지 불리던 듀게의 여러분은 과연 소비 생활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요. :-)

결국 소비에 있어서의 선택은 실익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남을 배려하는 '윤리적인' 소비가 얼마나 설득력과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인가 하면

저는 잘 모르겠더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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