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1 18:14
지난 10월에 개봉한 영화 보이후드를 며칠 전에 씨네코드 선재에서 보았습니다.
아카데미상을 휩쓸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영화관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하리라는 게 뻔히 보여서
수요일까지 상영이었으니까 전체 상영이 몇 회 남지않았던 영화를 운좋게 놓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이혼하여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전남편의 도움 전혀 못받는
인디영화관 같은데는 생전 들어보지도 가보지도 않은 친구와 보고 왔네요.
보고 나서는 가슴도 먹먹하고 눈물도 나고
놓쳤으면 어떡할 뻔 했어 하며 안도감까지 들었는데
막상 듀게에는 검색해봐도 별 얘기가 없더라구요.
요즘에 저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다 좋아요.
국제시장도 패딩턴도 좋았어요.
집에서는 꼭 러닝타임을 확인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게 됩니다.
몰입을 하게 해주는 환경은 공연장, 극장이 유일한 것 같아요.
보이후드는 참.. 보면서 러닝타임 걱정을 전혀 안 한 영화입니다.
요즘에는 영화의 몇분의 몇 지점에 갈등이 나오고
언제쯤 악당이 나오고 언제쯤 클라이막스였다가
언제 끝날 거라는 게 꼭 타임라인에 찍혀 나오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고
그래서 보기도 전에 질리는 경우가 많아요.
보이후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아요.
아이가 큰다는 얘기만 들었지 전혀 내용을 모르고 간 것이 탁월한 선택인 것 같고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는데도 무슨 일이 있었을 지 다 알겠는
그런 보편성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어요.
엘라 콜트레인의 연기나 패트리샤, 에단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스토리가 진행이 되는게 마치 제가 잘아는 옆집 애들 크는 것 보는 것도 같고
여자의 일생에 대해서 연민도 느껴지고 나였으면 어땠겠구나 하는 개입의 여지도 많이 보이고
나도 막내가 대학가면 저렇겠구나 하고 공감가는게 진짜 좋았어요.
그냥 좋았다는 말 말고는 뭐라고 말을 잘 못하겠다는 게 감상이었는데
혹시나 하고 듀게의 쓰기 버튼을 눌러도 그 이상의 감상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네요.
그냥 무조건 다 좋고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다시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 별 수 없이 어미의 마음이구나 싶네요.
딴 거보다 그저 지 새끼 자라는 걸 한 큐에 보는 어미의 심정이었네요.
아이가 지금 중학생인데 유치원 때 그린 그림과
그 때 사진만 봐도 가슴이 뭉클한데
초1부터 고 3까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스토리 있게 구성해서 보여주니
정말 내 애 자라는 것 보는 것 같았네요.
제대로 살아보려고 경제력 없는 남편과도 이혼하고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아둥바둥 경제적 곤란이나 학대라는 사자에게 새끼를 안 뺏기려고 발버둥치는 치게 하는 힘이
세상에 지 새끼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본능 말고 또 뭐가 저토록 강하겠나 싶고
그냥 나도 별수 없이 '새끼키우는 긴 얘기'에 세상의 모든 어미와 함께 공감할 뿐.
제가 아직 아들을 대학에 떠나 보내는 극 중 어미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해서
남은 게 장례식 뿐이라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는 패트리샤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게 좀 아쉬워요.
제가 한 65세 쯤 되었다면 남은게 장례식 뿐이라는 그녀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고 아직 멀었네요, 아줌마. 이러면서.
그리고 죽기 전 나이에는 어떨까요. 65세도 우습지 않을까요.
뭔가 더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다입니다...
아이고..뭐 표현이 안되니 한탄만..
같이 본 친구, 생업의 현장에서 고전하는 친구의 감상은 간단하네요.
재혼을 왜 하냐 남자보는 눈도 저렇게 없나 하는 저의 말에
먹고 살려고 했겠지. 애 둘 데리고 여자 혼자 쉽겠냐.
그렇죠. 그런 거죠.
친구아들은 스무 살. 친구 얘기도 영화한편 나옵니다만..
보이후드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2015.01.21 18:44
2015.01.21 18:48
평론가 김성훈씨의 말처럼 정말 잘 자라주어서 고마워요.
링클레이터의 뚝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와중에 혼자만 안 늙는 에단 호크;;;
2015.01.21 19:43
그야말로... '혼자만 안 늙는 에단 호크;;;'..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나요? ㅎㅎ..
2015.01.22 14:57
2015.01.21 20:21
이 글 읽다보니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ㅋ
2015.01.21 21:42
작년 최고의 영화였어요..
근데 보기전에는 정말 망설였어요...지루하다는 글이 너무 많아서 ㅠ
보고 나와서는 영화관에서 안봤으면 안될뻔했다..다행이다라는 느낌이에요..
저도 집에서 영화보면 전반적으로 몰입도가 떨어지거든요 . 스마트폰 보고 딴짓하게 되고..
보이후드를 그런식으로 vod로 봤다면 감동의 반도 못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튼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감동이에요. 그냥 저의 보잘것없던 인생도 하나의 영화처럼 돌아보게 되는..그런 영화였어요.
안그래도 지인에게 추천해주니...보고나서 이게 왜 재밌어? 하길래 제 감상을 설명하려고하니..애매하더군요
그래도 나름 설명했지만 이거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인것 같아요
2015.01.21 22:38
이제 15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어서 극장에서는 못보고 결국 며칠 전에 집에서 유료결제로 보았어요.
처음엔 좀 딴짓하면서 보기도 했지만 점점 영화에 빠져들더라구요.
우리도 지난 일을 되돌아 보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하나 있듯이 장면 장면이 그렇게 소소하게 기억에 남더군요..
에단호크를 중학교 때 부터 좋아했는데 그의 팬이 된거에 감사했어요. 그의 팬이 된 덕분에 비포 시리즈와 보이후드란 영화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영화의 마지막은 좀 씁쓸하긴 하더라구요.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남은게 없는거 같은 엄마라니..ㅠㅠ
게다가 그녀 인생에서 가장 괜찮았던 남자는 결국 무능력한 첫번째 남편인 건가요..근데 그 남자가 재혼한 뒤에는 좋은 남편이 되고!!!(하지만 항상 좋은 아빠이긴 했었죠.)
2015.01.22 13:45
저도 이 영화, 너무 좋았습니다.
가자고 떼 써준 친구(?)한테 고마웠어요. 지루하다는 평 때문에 어쩌나 조금 망설이기도 했거든요.
처음 학교 앞 잔디밭에 누워있을 때 나오던 음악이 왜인지 모르게, 그 장면과 함께 진짜 인상 깊게 남아있어요.... 따뜻하고 쓸쓸하고 안쓰럽고... 막 그랬어요^^
2015.01.22 14:51
저도 정말 좋았어요. 만들어 준 감독에게도 찍어준 배우들에게도 전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큼.
좋은 책을 열권은 읽고 나온 기분. 링클레터 감독 너무 좋아요ㅠㅠ
2015.01.22 15:00
이 영화 저도 좋았어요. 게시글이 별로 없는 이유는 뭘까요
저도 뭔가 말로 표현하기에는 먹먹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마도 그런거 비슷한거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