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하면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씨의 피아노 콘체르토 E minor 를 틀어놓고 있습니다. 상금이 얼마라든가, 연주 계획이 어떻다라든가, 조성진씨 수상 역사라든가, 조성진씨 멘트는 이랬다가 아니라, 조성진씨의 이번 연주 자체에 대한 길고 좋은 리뷰를 읽어보았으면 했는데, 별로 없더군요. 피아노 연주라는 게 들어서 느끼는 것이라 문자로 표현하기 어려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피아노 전공자를 만나서 조성진씨와 호로비츠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성진씨 연주를 이렇게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이야기한 걸 잠깐 정리합니다. 


제가 조성진씨 연주를 듣고 느낀 건 telegraph의 리뷰와 비슷합니다. 텔레그라프는 조성진씨의 연주에 대해서는 unequivocal하다 (모호하지 않다, 명백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3위를 한 케이트 류에 대해서는 a pianist of spirit and fire (영혼과 불의 피아니스트)라고 했는데 이 역시 좋은 표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링크: 조성진의 콘체르토

링크: 케이트 류의 콘체르토


조성진씨 연주는 텔레그라프의 '분명한 연주'란 표현과 더불어, 유튜브 댓글에 달린 "all-around (다방면에 걸쳐 잘한다)"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주르카도 잘치고 폴로네이즈도 잘치고 발라드도 잘치고 왈츠도 잘치고 콘체르토는 더 잘치고. 야구나 농구와 비교하자면 어떤 공을 던져도 잘 받아내고 잘 칠 수 있는 야구선수나 어떤 식으로 공을 패스해도 점수로 만들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를 보는 기분이더군요. 잘못친 음이 거의 없고, 간혹 미스터치다 싶은 것도 더 강하게 쳤으면 좋았을 것을 약하게 굴려쳤네 싶은 수준. 조성진씨는 가장 시적인 곡을 칠 때에도 감정을 잘 콘트롤하면서 연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폴로네즈를 칠 때에는 감정을 좀 더 많이 드러낸 것 같던데, 심사위원들이 이 얄밉도록 자기 제어력이 좋은 연주주자가 감정을 드러낸 것이 기특해서 폴로네이즈 상을 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링크: 조성진의 폴로네이즈


3위를 한 케이트 류의 연주는 분명 인상적이었는데, 콘체르토의 경우 뒤로 갈 수록 힘이 달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감각을 역량이 못따라준달까요. 2위의 아믈랭은 "왜 쇼팽을 브람스 같이 치고 있냐"는 느낌. 콘체르토도 결코 인상적이진 않았습니다. 


조성진씨 쇼팽을 듣다보니 호로비츠의 쇼팽이 유튜브 추천에 떠오르기에 호로비츠의 쇼팽도 듣게 되었습니다. 마치 종이로 귀를 막고 듣는 것 같은 나쁜 음질이지만, 80대가 되도록 콘서트를 이끈 거장의 솜씨는 또 스물한살의 쇼팽콩쿨 우승자와는 한참 다르고, 과연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호로비츠의 쇼팽을 듣다보니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를 듣게 되었고,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를 듣다보니 호로비츠의 쇼팽은 못듣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조성진씨의 연주가 포스를 수련하는 제다이 견습생같은 연주라면, 호로비츠의 연주는 피아노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능구렁이 요다의 연주라는 느낌입니다. 


오늘밤도 쇼팽을 틀어놓고 일해야겠네요. 좋은 하루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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