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 좀 애매하긴 합니다. "인맥도 실력"이라는 세상에서는 빽을 잘 쓰는 것도 실력이라고도 하고, 빽, 추천, 소개 등 비슷한 용어에서 정확한 선을 긋기도 어려우니까요. 하여간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른바 빽을 쓰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거기에 집착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건 '아는 사람'부터 찾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잘 알고있어야 할 것이, 그 빽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실무자는 기분 무지하게 더럽고 맘 상한다는 겁니다.

 

회의 시작하면서 처음 꺼내는 첫마디가 "우리 대표님이야 뭐... 여기 사장님이랑도 호형호제 하시는 사이고.. 얼마 전에 모 국회의원과도 식사를 같이 하셨습니다만.. 의원님께서 저희 사업 계획 들어보시더니 나라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좋아하시더라구요. 꼭 추진되게 도와주시겠다고..." 뭐 이렇게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가지고 온 제안서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더 노골적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뭐 말할 것도 없지요. 기자 하나가 홍보실에 나타나 "나랑 친한 형님이 이번에 뭘 하나 하시는데.. 스폰서를 좀 하시죠? 검토해주세요. 아 근데.. 얼마전에 공모전 하나 하셨죠? 그거 선발 과정에 문제가 좀 있다던데..." 하면 뭐 또 최대한 비슷한 일 하는 부서에 "어떻게든 해주라"는 오더가 떨어지게 되죠.

 

뭐 좋아요. 제안서 내용으로 승부할 자신이 없거나, 아니면 한국사회는 인맥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신 나머지 우회로를 쓰셨으니, 거기에 맞게 상대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름칠을 하고' 온 사람들 중에는, 정말 좀.. 한심한 경우가 있어요. 어쨌거나 빽이 되는 사람이 전화 한 통이라도 해줬다는 건, 그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노력을 해준 겁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제가 미친척하고 "모 국회의원 청탁 파문" 이딴 식으로 시끄럽게 굴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연결, 더 나아가 상당한 수준의 압력까지 가해줬으면, 그 후에 나타나서 최대한 정석으로 승부를 해야지, 이건 뭐 빽을 쓰신 건지 빽이 직접 오신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아주 거만함이 하늘을 찌릅니다. "전화 받았지? 니가 이거 안하면 어쩔건데? 나 그 사람 아는 사람이야 후후" 하는게 팍팍 느껴져요. "아, 이게 또 그 부처 승인이 필요해요? 뭐 그럼 제가 해결하면 되죠 뭐. 그 쪽에 기자 선배들도 많이 출입하고..."

 

빽을 썼으면 좀 민망함을 느끼고, 힘을 써준 그 분께 혹시라도 폐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겸손하게 일 처리 하는 법은 누가 안가르쳐주는지... 으.. 안그래도 기분 나빠져 있는데 과시, 협박, 거만함, 뭐 이런 것만 잔뜩 느끼게 하니 즐거워야 할 금요일 오후가 이거 영..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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