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들

2016.05.24 12:11

underground 조회 수:2097

숭고함은 아름다움과는 다르다고 온라인 미학 강좌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것 같아요. ^^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사나운 바다와 같은 거대한 자연에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두려움 같은 것이 


숭고함이라는 감정을 일으킨다고 들었던 게 기억나요. 


운명이 주는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견디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도 숭고함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 같고요. 



얼마 전에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영화 <세이사쿠의 아내>를 봤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주인공은 남자가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짓을 그 남자에게 저질러요. 괜찮은 사회적 지위에서 멀쩡하게 잘 살던 남자를 


자기 앞가림도 못하게 망쳐놓죠. 여자는 그런 짓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달게 받을 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학대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남자를 얻는 대신 평생 그 남자를 돌보고 먹여살려야 하는 의무도 기꺼이 지려고 해요. 


화목하게 살던 부부도 병이나 장애가 생기면 갈라서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요즘 세상인데 한 사람을 갖기 위해 이 정도까지 


각오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런 이기적인 사랑의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 강도와 희생의 대단함이 저를 압도해 버리더군요.      



지난 주말에는 <베르나데트의 노래>라는 영화를 봤어요. (https://youtu.be/4qyOR7FPLx8 


가끔 종교를 갖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맞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종교를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연약한 몸을 가지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세상을 수십 년 동안 멀쩡하게   


살아낼 수 있을 만큼 인간은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닌 것 같거든요. 가끔은 자신의 의지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그냥 그 앞에 엎드려 기도할 수 있게 해주는 거대한 존재가 인간에게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는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신비 체험을 하고 기적을 일으킨 소녀, 그리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혼란스런 반응을 보여주는 영화예요.


이 영화는 그 소녀의 체험이 진짜인가를 검증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진행되는데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숭고함을 느끼게 하죠. 


어찌보면 이 소녀는 그냥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럴 운명이어서 그 길을 갔어요. 이 소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뭐 대단한 사명감이나 


자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다만 그 종교적 체험이 너무 황홀한 것이어서 기쁘게 선선히 그 길을 갔죠. 


숭고함은 자신에게 주어진 거대한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말없이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을 볼 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자신이 겪는 시련과 고통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 받으려는 생각도 없고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그저 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볼 때 느껴지는 숭고함이 있어요. 



사랑의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어도 그 사랑에 자신을 송두리째 헌신하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숭고함, 


믿음의 내용이 진실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어도 그 믿음에 자신을 송두리째 헌신하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숭고함, 


가끔 옳음과 그름, 진실과 거짓에 대한 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그 대상을 묵묵히 지켜보게 만드는, 그냥 그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그런 압도적인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듀게분들께 숭고함을 느끼게 했던 영화나 소설이 있나요? 현실에서 일어난 일도 괜찮고요.  


장대비가 퍼붓고 천둥벼락이 치고 하면 숭고함이 좀 느껴질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비가 그칠 것 같네요. ^^ 


뭔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를 맞닥뜨릴 때의 숭고함을 느끼고 싶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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