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다에 대한 옹호

2016.06.27 23:11

미래 조회 수:2446

비밀은 없다 (2015) 이경미

0.
어떤 면에서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곡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영화에요,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이 미로에 빠져버리는 점이 말이에요. 
0.5
곡성이 시도한 것은 상징계의 배반이에요.
모두가 알고 있는 상징적인, 오컬트적인 요소를 좍좍 뿌려두어 관객이 신나게 '상징적인 해석'을 하도록 내버려두었어요. 이를테면 '물=생명'이라는 기계적인 은유적 소재가 여기저기 튀어나와요. 닭, 일본인, 무속신앙, 유주얼 서스펙트....
상징체계로 인해 영화에 깊이가 생겼어요.
그.런.데
상징체계로 영화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말아요.
관객인 우리가 내러티브 요소를 놓치면서까지 보존했던 그 요소였는데 말이에요.
아뿔싸- 해답인줄 알고 쫓아갔던 상징계들은 '미끼'였던 것이에요.

1.미끼
'비밀은 없다'에서 관객이 쫓아갈 수 있는 것은 풍부한 디테일밖에 없어요.
캐릭터라이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테일, 디테일이 풍부해질 수록 캐릭터의 생명력이 확보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마찬가지에요.
캐릭터의 디테일로 요리조리 해부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말아요.
이를테면 손예진의 모성애라던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던가, 출신이라던가 말이에요. 
곡성과 마찬가지로 가장 당연한 것들이 '미끼'였어요.

2. 불친절
극장에 들어선 관객에게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비밀은 없다, 그러니까 저리가!"
화면은 중심에 피사체를 두어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때문에 편안해요. 하지만 소리는, 영화의 소리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해요. 그야말로 작정하고 방해해요, 허구의 아티스트를 만들어내면서까지 말이에요. 내러티브도 공격을 시도해요.
'기승전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숨넘어가요.

3.맺음
이 영화에서 가장 기묘한 것은 후반부에서 감정선과 스토리라인이 자연스레 돌아와 잔잔히 맺어진다는 것이에요. 불과 중반부까지만 하더라도 영화의 불친절함에 억눌려 탈진했는데 말이에요.
+여성의 복수에서 금자씨가, 어지러운 촬영은 나카시마 테츠야의 the world of kanako가 떠올라요.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영화를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속박이 걸려있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어지러움'은 '비밀이 없다'와 비교하면 단순하고, 예측가능한 기계적인 기술법이었어요. 

(그러니까, 이정도의 어지러움은 허용해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비밀은 없다'는 대단한 영화입니다. 누구나가 만들어 낼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시 0.
곡성은 해석을 위한 첫발자국이 쉬워 지적 욕구를 자극하고, 모두들 각기 다른 해석을 시도하지만 결국 아무도 맺을 수 없었던 영화였어요. 비밀은 없다 해석의 높은 진입장벽이 참패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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