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게시판에 글도 자주 남겼던 것 같고, 글도 하루에 한 번씩 챙겨봤어요.

요즘에는 생각나면 오는데, 오늘 일주일만에 온 것 같네요.


사실 오늘 도서관에서 우연히 옛날에 발간된 키노 2002년 호도 봤어요.

키노랑 직접적으로 상관은 없지만...무의식 중에 듀나게시판을 생각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곳에 글을 써서 가시적으로 득 될 것도 없고, 어찌 보면 업보나 쌓는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인간 냄새를 매우 좋아합니다.

누굴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걸 삶의 낙으로 삼죠.

그리고 오늘은 듀나게시판이 매우 그리웠습니다.

얼굴도 못 본 군중의 한 무리를 그리워한다니 참으로 기이하고 어리석은 짓이죠.


그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그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요.

그 인간과 사랑을 하기 위해 저는 그 인간이 될 수 있는 현실 속 사람의 얼굴과 몸을 빌립니다.

서로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고 노력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은 점점 내 마음 속의 그 사람이 되어가지요.

그게 만약 안 된다면, 결국 이별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어쨌든 인간 삶에는 사람만 남는 것이고, 사람과 살기 위해 사람이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별이라는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마음 속 얼굴 없는 그 사람이 내 옆의 그 사람과 닮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틈을 벌리고자 하죠.

그는 이미 그 마음 속 그 사람과 비슷하지만 말이에요.


요즘에는 영화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볼 삶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한 번 볼 때 두시간이나 걸린다는 걸 아십니까?

제 주변의 사람들을 챙기고 제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월요일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느라 온 정신이 빼앗겼습니다.

캄캄한 밤에 놀이터에서 희미한 불빛으로 마지막을 읽어냈지요.

아침에 소설 초반을 읽으면서는 극렬한 쾌락이 쏟아져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안국역에서 극도의 피곤함을 느껴 눈을 감고 있어야 했어요.

글의 잔상이 당신을 괴롭힙니다.

그건 매우 힘들어요.


어찌 되었든, '인간실격'보다 작품성은 떨어질지라도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왜 좋은지 언어화, 즉 설명은 안 되지만요.

사실 '인간실격'도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뭘 봐도 쉽게 말을 늘어놓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제 눈에 먼저 이미지가 다가옵니다.

저수지에서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가 새 한 마리를 보냈습니다.

갑자기 제 마음에 둥지를 틀어버리고 나가지도 않으며 저를 괴롭히네요.


어찌 되었든 가을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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