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1 10:32
문대통령 취임할 때부터 몇 가지 껄끄러웠던 이미지 정치들이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자리 상황판이었죠.
그외에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비서관들이 테이크아웃 커피잔 들고 산책하면서 회의하기도 기억이 나고.
주요 국경일에 탁현민스러운 착즙쇼들도 기억에 나고요.
일자리 상황판은 정권 초기에는 좀 보여주더니 그 이후에는 일자리 상황이 별로 안 좋은지 잘 안보여주더라구요.
아니나 다를까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일자리 상황판 보여줬다가는 난리 나겠죠.
작년의 일자리 상황판과 비교하면 현재의 상황은 좋아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문재인 정부판 "지곤조기"인 것 같네요. 아직은 소득주도정책의 효과가 나오기는 이른 시점이다.
그래요. 소득주도정책이 즉각적인 경제성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테니까 이해합니다.
근데 혁신성장은 어떻게 된 거죠?
정부예산에서 R&D예산이 20조 가까이 되어가는데, 이중 많은 부분이 관성적으로 지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명박근혜정부에서는 로봇물고기, 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곳으로 흘러들어가서 사라졌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20조가 딱히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조원을 차라리 헬리콥터에서 현금다발 형태로 뿌려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20조원이 특별한 성과없이 지출되면서 몇몇 교수들 주머니만 불려주고 있다면,
그런 방식보다는 무작위로 돈을 뿌리는 게 소득주도정책에 부합하는 것일 수 있다는 거죠.
혁신성장은 안하고 있으니 소득주도정책에 몰빵. 다소 시니컬해졌네요.
한달 전에 장하준 교수가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죠.
장 교수가 지적한 대로 국가R&D 전략은 경제성장에 매우 유용한 툴입니다.
다만, 전략이 잘 짜여지고 실행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장 교수는 종종 보호무역주의를 연상케 하는 발언도 하곤 하는데,
WTO 가입국이면서 FTA를 촘촘하게 체결한 한국의 사정상 맞지 않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R&D 전략은 국제통상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국가예산이 투입된 기업은 과감한 국유화도 해야 합니다.
관련해서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sovidence님의 포스트가 있습니다. (http://sovidence.tistory.com/964 )
"국가주의 논쟁"이 진행되는데 좌파 일부에서 이런 주장을 들고 나오면 볼만할 것. 지난 번 강국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말했는데 기사화되지 않았던 내용 중 하나가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박근혜의 창조경제가 낫다는 것.
나같이 사회학 그 중에서도 노동시장 불평등 공부하는 사람이 주제넘게 낄 건 아니지만, 경제사회학도 한 발 걸치고 있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경제에서 국가주의 없이 잘되는 국가 못봤음. 개인의 자유 권리에서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시켜고, 국가가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야지, 경제 발전 전략에서 국가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어디있음?
노무현 정부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한 선언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가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권력은 정부에 있었고 지금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해야 할지 모르니까 문제죠.
시장자본주의이 첨단을 달리는 미국의 경우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니까 기업들이 비토할 수 없습니다.
이번 정부가 준비가 안 된 채 출발한 면모 중의 또 하나는,
좀 촌스러워진 표현으로 "국가대계"를 그려놓지 않은 상태로 집권했다는 점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에 동북아 허브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죠.
그 허브가 물류 허브도 되었다가 금융 허브도 되곤 했죠.
그리고 그 모든 구상들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의 "국가대계"는 계속 시도 되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 정부가 잘하는 것은 적폐청산과 북미 협상의 중간자 역할인데,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잘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가야할 방향의 선택지 여러 가지 중에 제가 제일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한 문장에 축약되어 있습니다.
Lannister pays his debts.
뭐 어쨌건 한국은 국가주도 전략산업 육성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죠. 박정희 때 중화학공업 (박정희의 원래 계획은 아니었다고 하나 어쨌든 나온 결론은 중화학공업이었으니까) 김대중의 IT와 문화산업 (벤쳐부작용도 있고, 김영삼 때 시작한 부분도 있으나, 국가적 규모의 미래산업으로 체계적 푸시를 받은 건 역시 김대중 때)
그 이후론 음.. 노무현은 일단 김대중의 기조를 이어가서 성숙 단계로 올렸다고 볼 수 있겠고, 이명박의 토건과 박근혜의 창조경제는 별로 평가할 게 없고
그 다음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은 좀 핀트가 안맞는 느낌이긴 합니다. 초기산업화의 패러다임을 잡은 (어쨌거나, 소뒷걸음치다 쥐잡은 거라고 보건 어쨌건 잡긴 함…) 박정희, 후기산업화(post-industrialization)의 한국형 패러다임을 구축한 김대중, 이제 슬슬 다음 국가단위 전략이 나와줘야 하는 시기긴 한데.
분배전략을 내어놓고 이것으로 성장할 수 있다 라고 바람을 잡는 느낌이죠. 한국 사람들이 워낙 성장을 좋아하고 분배에 회의적이니까 (이런 성향 자체도 사실 이해할 만한 것이긴 함… 파이를 먼저 키우자 라는 국가전략의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성공 사례가 한국이라, 그 성공경험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죠) 성장전략으로 포장해서 내놓은 것인데
임금증가->내수진작->경제활성화는 닫힌 국민경제를 기본 대상으로 하고 거기에 국제교역을 잔여범주로 추가하는 고전적 (케인지언 포함) 경제학적 모델로는 가능한 얘기일 수 있는데, 한국처럼 국제교역을 통한 성장이 모델링의 베이스 자체인 경제에는 영 말이 안되죠.
피해갈 수 없는 단순한 진실은, 국민경제의 성장은 결국 임금이 아니라 생산성을 따라간다는 거죠. 생산성이 임금보다 높으면 고용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나고 임금에 상승압력이 생기고, 반대의 경우 기업은 해외로 나갑니다. 임금인상주도 성장이라는 전략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한국에 뭔가 노동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외부적 조건 (이를테면 파시즘 정권의 노조탄압이라든지)이 있어서 생산성에 비해 임금수준이 턱없이 낮은 경우에 그 외부조건을 철거해 주는 것인데, 현재의 ‘소득주도성장’ 이라는 건 노동시장에 외부조건을 더 집어넣겠다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임금상승은 분배전략에 해당하는 거고, 성장전략으로는 국가R&D가 됐건 뭐가 됐건 생산성 향상 전략이 와야된다는 거죠. 신산업 성장이나 슘페터식 혁신이나 AI거나 교육개혁이나 국가인프라 구축이나 뭐든간에.
근데 마지막 단락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한국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