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4 15:22
이런 일들을 왕왕 겪으신 분들에게는 저 정도는...싶으실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프리랜서 일을 근근히 이어오던 중 회사의 도산으로 임금 체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공공 기관은 SNS에 올라가는 원고를 쓰는 일을 틈틈이 하고 있었습니다.
공공기관이 중간 회사에 외주를 맡기고, 중간 회사가 저와 같은 작가들을 모집하여
글을 관리하고 급여를 주고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래도 꽤 오랜동안 멀쩡히 급여를 받아와서 별 탈 없는 줄 알았는데,
올해 원고를 마감하고도 급여 알림 소식이 없어서(월말쯤 나옵니다)
혹시나 해서 연락해 봤는데
그새 회사가 어렵게 되었다더군요(그렇게 된 지는 꽤 되었답니다. 다만 저희 같은 외주 작가에게는 일일이 알리지 않았을 뿐)
그래서 지금 공공기관과, 저희 작가들과 연계된 그 사업도 난항에 빠지고 있구요.
이리저리 해서 회사가 계속 일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나아지면(자세한 설명은 회사의 일이라 생략하겠습니다)
두세 달 사이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임금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도의적'이라 함은, 자신들은 법적으로는 크게 책임이 없다는 뜻인 듯합니다.
물론 계약서까지 다 쓰고 맡은 일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가 받아야 할 급여는 30만원이 채 안 되지만
(회사 직원의 말로는 자신들은 더 많은 액수의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네요)
법적으로 가도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나, 돈을 다 받을 수 있나 회의가 오면서
우울감도 함께 오네요.
어차피 지금은 더 채근해 봐야 나올 결과가 없어서, 일단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급여가 적은 것은 차라리 괜찮아도 제때 못 받는 것에는 극도로 예민한 저 같은 타입은
이런 일이 참 견디기 힘드네요.
다루는 금전의 규모도, 대하는 마음과 목적도 저와는 다르신 어머니는 그 정도는 좀 기다려 보라시며
이 김에 그런 일(글쓰기와 같은 창작)은 접고 고정적인 일을 알아봐야 되지 않겠냐며
주부 부업에 해당되는 일을 권하십니다.
네,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면 해야지요. 한창 책임져야 할 어린 아이까지 데리고 있는데요. 약간의 재주가 있다고
그걸 내세워 생계 잇는 수단을 가볍게 여길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막연히 우울하군요.
물가가 오르는 것이 저 같은 물렁한 사람에게도 피부로 다가오고, 아이는 한참 돈과 엄마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취학을 앞두고 있고...
이십대 때 좀 더 열심히 살았을 것을, 세상살이의 차가운 면에 스스로를 좀더 노출시켰어야 하는 것을...이란 생각을 새삼 다시금 합니다.
요즘 들어 저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이십대 때부터 좀더 치열하게 산 이들 몇몇이
소소하나마 자기 사업체를 가지고 재능을 발휘하고 수입을 얻는 모습을 보면
지나간 세월을 좀더 모질게 보내지 않았던, 다 지나버릴 인간관계에 매달려 보냈던 제 이십대가 너무 아쉽고 씁쓸합니다.
뒤통수를 더욱 섬뜩하게 하는 건, 지금 역시 훗날의 제게 그와 비슷한 생각을 제공할지 모를 시기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어려운 시기마저도 훗날의 제게는 가능성이 아니었을까, 로 남을 수 있다는 점. 그런데 지금의 저로서는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
2018.12.04 16:34
2018.12.05 12:40
아마 그러한 이유로 제 어머니도 직업의 종류와 형태를 바꾸길 바라셨겠죠. 저 역시 큰 금액이 아니라 다행이다, 일하면서 오로지 노동한다고만 여긴 것도 아니고
일하면서 제 배움을 쌓은 것도 있으니 손해만 봤다고 생각하지 말자...맘 밑바닥에 남은 긍정성을 끌어모아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2018.12.05 11:35
“지나간 세월을 좀더 모질게 보내지 않았던, 다 지나버릴 인간관계에 매달려 보냈던 제 이십대가”
거의 비슷한 후회와 상심을 하던 친구가 있어요. 바로 몇 일전이군요.
“ 그 세월은 그 나이대는 다들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살만한 이유가 있었어”라고 말을 해줬는데
다만 ‘다 지나버릴 인간관계’에 대해선 (그 친구는 왜 그 시절엔 세상에 친구만 있는것처럼 살았는지라고 했군요) 살짝 그러게 왜 그랬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더군요;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는 가장 쓸모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그렇게 채우면서 얻은 것도 많았을 거에요. 단지 그것이 현재의 물질적 조건과 상관이 없다고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기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잘 견디고 버티시길 기원합니다. 너무 흔하고 누추한 위로밖에 드릴게 없어 송구합니다;
2018.12.05 12:46
실은 이 글을 어제 써놓고 오늘 문득 다 부질없게 느껴져 지우려고 했는데, 소부 님이 남겨 주신 댓글에 뜻밖의 위로를 받네요.
그렇죠. 사실 그 시기에 느끼고 얻은 것들이 현재의 물질적 조건과 상관없다고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는 건데...현실은 그렇지 않죠.
하지만 역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간을 보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래야 버틸 것 같네요.
인간사에 희망은 없다지만, "세상에 희망은 없어"라고 드러내 외치기보다는 뻔히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없을 희망이라도 품고 사는 삶이
더 인간다울 수 있는 것처럼요...
말씀 감사합니다.
2018.12.05 17:26
좀 이해가 안가는게, 계약서까지 다 쓰고 하신 일인데 왜 급여가 '도의적 책임'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요? 직접 계약한 회사가 아닌 원청회사쪽에서 한 이야기 인가요?
2018.12.11 09:40
마땅히 지급해야 할 임금에 도의적 책임 운운하면.. 좀 이상한 회사라고 생각이 들죠. 어찌됐든 해결되서 꼭 받으시길 바래요. 시간을 낭비한 느낌은 나이가 몇살이든 똑같이 가지게 되는 일종의 옵션 같은 느낌이예요. 후회없이 백프로 잘 살고 있다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죠. 저도 그렇구요. 그냥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 어제보다는 오늘 좀 더 좋은 하루를 사는 것. 그게 당장의 목표인 것 같습니다.
하청업체의 임금체불은 원청에서도 책임져야 할 텐데, 정규직들도 그러기 어려운 상황에 계약관계인 프리랜서는 더욱 어렵겠죠. 우리나라에 프리랜서 임금 제때 잘나오는 영역이 있기는 할까 싶습니다. 큰 금액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는 수 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