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안경

2019.03.21 20:41

Sonny 조회 수:1383

푸쉬업한다고 안경을 잠깐 벗어놨다가 깨먹었습니다.

진짜 바보같은 게, 바닥에 내려놨단 말이죠. 그러면서 '혹시 이걸 내가 밟으면 어쩌나' 하고 한 0.1초 정도 생각했었어요. 

사람 손이나 발이 닿지 않을 곳에 올려놓으면 됐는데 그게 귀찮다고 그렇게 방심하고 한 오분후에 우지끈!

너무 허탈해서 아아아아아 속으로 내면의 비명을 지르고 오분전의 저를 폭행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열심히 찾아야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경솔할 수가 있지? 삼류 시트콤에서도 이런 설정은 안 쓸 텐데?


그런데 확실히 오래되긴 했지만 싸구려는 아니라 참 예쁘게 부러졌더군요. 

막 가루 휘날리고 산산조각 이런 게 아니라 딱 조각조각 뚝뚝 조립하기 편하게 부러졌어요.

렌즈는 멀쩡하겠다 일단 부러진 테 조각들을 모은 후 동네 편의점에서 황급히 순간접착제를 사왔습니다.

와우! 세상은 발전했고 좋아진 건 스마트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순간접착제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해졌어요!

책상 위에 깔아놓은 종이에 순간접착제 통이 순간 붙어서 그거 떼내겠다고 까불다가 제 손이 막 종이에 붙고...

예전에 이나중 탁구부였나 거기서 자기 여자친구한테 몹쓸 짓을 하려한 남자를 혼내주려고 항문을 순간접착제로 막아놨다고 하던데 이거 정말 끔찍한 묘사라고 느꼈습니다...


안경테를 부랴부랴 순간접착제로 붙이고 좀 기다려본 후... 오!! 순식간에 이 액체가 경화되어서 안경테를 감쪽같이 이어줬습니다.

쓰면서도 신기방기. 애들이 건드리면 절대 안되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효과가 좋았어요.

뻔뻔하게도 한 1년만 더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돈은 조금 더 들더라도 스페어 용으로 테를 하나 더 사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알은 멀쩡한데... 테 부러졌다고 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좀 늙다리같긴 한데 괜히 이런 데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되더라구요.

왜 산다는 게 이래저래 고장난 몸을 끌고 거기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게 되잖아요.

옛날에는 이틀을 새도 끄떡없었지만 이제는 제 시간에 못자면 그 다음날 아침에 낑낑대면서 일어나야 하고.

뼈나 관절에 부상을 입으면 평생 완전회복은 하지 못한 채로 그 부위에서 일기예보를 받게 되고... 내일 비오겠구나! 욱신욱신~

SF라면 오토매틱 인공의수나 의족(이런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는 의수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을 새로 갈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시대잖아요. 

그래서 육신은 완전함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하죠. 어딘가 부러지거나 이전만 못하면 불완전하다고 느끼니까요. 그리고 불안해지죠.

혹시나 더 망가지면? 갑자기 악화되면? 이전만큼 쌩쌩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면? 

앞으로도 좋아질 일보다는 안좋아질 일만 늘겠죠. 운동으로도 노화는 극복할 수 없는 거니까요. 사람 몸은 계속 닳게 되어있는 거고...


그래도 뭐 어때 싶습니다.

안경 부러졌지만 접착제로 붙여서 쓰면 되고~ 어쨌든 렌즈는 멀쩡하니까요.

이 테 부러지면 다시 새로 사서 써야죠. 애착을 잠시 접어놓고 현실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몸이 안좋아지면 안좋아진 대로 더는 안나빠지게 애쓰고~ 돈이나 시간도 좀 더 투자하고~ 

계속 중고가 되어가도 어쨌든 제 기능 하고 있음에 만족하고, 계속 기름칠하고 광내면서 살아야죠.


물론 아직 덜 늙어서 그렇다!! 하고 저의 낙관을 꾸짖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비관에 빠지는 것보다야 대책없이 희망이라도 갖고 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ㅎ


전 무릎 관절이 안좋은데, 안좋은대로 뛰기는 좀 자제하고 걷기를 하고 있어요~

무릎 안좋다고 자빠져있는 것보다야 낫겠죠! 다른 효과적인 운동이 있으면 그거 하면 되고...

부러진 안경은 접착제로 착 달라붙어서 여전히 제 기능을 하는 중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44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9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628
126110 생산성, 걸스로봇, 모스리님 댓글을 읽고 느낀 감상 [20] 겨자 2018.10.24 471023
126109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 - 장정일 [8] DJUNA 2015.03.12 269807
126108 코난 오브라이언이 좋을 때 읽으면 더 좋아지는 포스팅. [21] lonegunman 2014.07.20 189494
126107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의 글 ㅡ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 결코 아니다' [5] smiles 2011.08.22 158052
126106 남자 브라질리언 왁싱 제모 후기 [19] 감자쥬스 2012.07.31 147383
126105 [듀나인] 남성 마사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9] 익명7 2011.02.03 106111
126104 이것은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1] 책들의풍경 2015.03.12 89307
126103 2018 Producers Guild Awards Winners [1] 조성용 2018.01.21 76273
126102 골든타임 작가의 이성민 디스. [38] 자본주의의돼지 2012.11.13 72970
126101 [공지] 개편관련 설문조사(1) 에 참여 바랍니다. (종료) [20] 룽게 2014.08.03 71722
126100 [공지] 게시판 문제 신고 게시물 [58] DJUNA 2013.06.05 69113
126099 [듀9] 이 여성분의 가방은 뭐죠? ;; [9] 그러므로 2011.03.21 68549
126098 [공지] 벌점 누적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45] DJUNA 2014.08.01 62753
126097 고현정씨 시집살이 사진... [13] 재생불가 2010.10.20 62417
126096 [19금] 정사신 예쁜 영화 추천부탁드려요.. [34] 닉네임고민중 2011.06.21 53617
126095 스펠링으로 치는 장난, 말장난 등을 영어로 뭐라고 하면 되나요? [6] nishi 2010.06.25 50806
126094 염정아가 노출을 안 하는 이유 [15] 감자쥬스 2011.05.29 49814
126093 요즘 들은 노래(에스파, 스펙터, 개인적 추천) [1] 예상수 2021.10.06 49788
126092 [공지] 자코 반 도마엘 연출 [키스 앤 크라이] 듀나 게시판 회원 20% 할인 (3/6-9, LG아트센터) 동영상 추가. [1] DJUNA 2014.02.12 494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