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몇가지 디테일

2019.05.31 05:16

SnY 조회 수:3041


1. 영화 시월애에서 나와 여기저기 자주 인용되는 대사가 있죠.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3가지가 있다.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다." 

사랑과 기침 부분은 덴마크 속담이라는 말도 있긴 한데 검색해도 따로 안나오는 걸 보니 이 세가지를 모두 꼽은건 시월애 원작자 원태연 같습니다.

기생출을 보던 도중에 딱 떠오른 말이었어요. 혹시 봉감독도 이 말 때문에 복숭아씬을 넣은건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티저 내래이션에도 특이하게 기침 소리가 나오죠.


2. 제작진들이 우스갯소리로 "계단영화"라고 부를 정도로 제일 주요한 미장센이 계단이죠. 물론 집주인과 손님의 관계에서 당연한 상황이겠지만, 

계단을 올라갈때는 사모나 사장이 앞서고, 내려갈때는 기택 식구가 앞서는 장면이 눈에 띕니다. 집주인이 아닌 사람들끼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구요.  


3. 계단 다음으로 눈에 띈 미장센은 색감의 대비였습니다. 노란계열 색깔과 푸른 계열 색깔의 대비는 원래 많은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장치죠. 

셰이프오브워터나 퍼스트맨에서 인상있게 쓰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기생충에서는 단순히 색감의 대비를 넘어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불어넣습니다. 

온도와 습도죠. 노란 계통 색이 갖고 있는 보드랍고 따뜻하고 바삭바삭한 느낌과 푸른 회색이 갖고 있는 축축하고 눅눅한 느낌을 끊임없이 대비시킵니다.

기택식구 집의 전체적인 색조가 푸른 회색인 가운데, 유일한 노란빛의 화장실에서 남매가 바깥세상과 소통 창구를 발견하거나, 

절망속에서 기정이 위안을 찾는 장면도 이 색감과 연결돼있죠. 박사장집이 노란 색조인건 말할것도 없구요. 

기택 식구중에선 생일파티에서는 기정이 유일하게 아이보리 색감의 옷을 입습니다.   

그외에 복숭아, 다혜의 일기장, 기택 동네의 가로등, 기택가족의 첫 챌린지인 피자박스와 전단지 등등이 눈에 띄는 노란 색감입니다. 


4.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한번씩 새까만 옷을 입더군요. 이 역시 주제의식과 연결된 선택 같습니다.


5. 매체에서 자주 쓰이는 스틸컷 중 하나가 연교가 차고에서 거실로 올라오며 놀라는 장면인데, 구도와 인물의 위치, 똥그랗게 뜬 눈이 연교의 플래시백속 인물과 비슷합니다. 지하에서 매실차를 갖고 올라오다 기정을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도 그렇죠. 둘 다 깜짝 놀란 눈을 하고 있지만 하나는 발견하는 입장, 다른 하나는 노출되는 입장입니다. 


6. 다송의 그림을 가리키며 연교가 바스키아를 언급하죠. 이 역시 의미있는 레퍼런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7. 다혜도 기우 때문에 다소 그렇게 나오지만, 다송 캐릭터가 갖고있는 하층민 연결고리들이 인상깊었습니다. 다송이가 밤에 쓰다 잠든 노트도 그렇지만, 다송의 그림을 자화상으로 인식하는 연교의 멘트도 그렇죠. 다혜가 다송이는 다 가짜라고 이르기도 하구요.


8. 칸느 기자회견에서 봉감독은 "반지하"라는 개념이 갖고있는 한국의 특수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습하고 어둡지만 햇빛이 들긴 하는, 지상과 맡닿아 있다는 실같은 희망과 더 낮은 지하로 내려갈 것 같은 공포의 아슬아슬한 중간지대를 언급했습니다. 물론 반지하 건축 설계는 다른 나라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봉감독 말대로 영어권 불어권에서는 "반지하"라는 표현이 없죠. 지상과 가까운 반지하면 "아래층"이라고 에둘러 말하고, 거주 용도로 잘 쓰지 않으면 그냥 "지하"로 퉁치더군요. 


 9. 영화속 박사장의 은밀한 면이 낱낱이 보여져서 그렇지 공적인 사람으로서 박사장은 아랫사람들에게 예의 있는 상류층 사람으로 보이겠죠. 사실 "선 넘지 말라"는 따끔한 지적이 그다지 갑질 발언으로 보일 일은 아닌데, 그것마저도 우회적으로 표현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박사장을 타자화할 수 밖에 없는 그 형용하지 못할 재수 없음을 보면서 영화가 상류층의 악의 없는 무지를 원죄처럼 꼬집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0. 영화 후반부에 스치듯 나오는 외국인 주인 역할의 배우도 엑스트라가 아니라, 안드레아스 프롱크라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꽤 잔뼈 굵은 외국인 배우더군요. 옥자에서 한번 제작진들과 인연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11. 부산행, 옥자, 기생충으로 이어지는 해외 흥행 한국영화들 때문에 최우식을 알아보는 외국팬들이 많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도 잘 하니, 뜻이 있다면 외국 작품에 참여하는 모습도 보면 좋을 것 같아요. 


12. 영화 엔딩크레딧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가 최우식의 목소리인건 나중에서야 알았네요.


13. 보통 영화 드라마속 가족구성원들은 별로 안닮기 마련인데 기택 가족역 배우들끼리는 얼추 믿어지는 인상이죠. 그래서 더 남을 연기하는 컨셉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옥자 직후부터 봉감독은 이미 최우식과 송강호의 부자 관계 작품을 염두에 뒀다고 하네요. 


14. 여기저기서 영화속 성역할에 대한 얘기를 하더군요. 가부장적이고 고정관념에 박힌 박사장 부부와, 다른 두 아내들의 역할을 그리는 방식이 의미있는 설정 같았습니다. 그래서 술 먹다가 발끈하는 기택의 모습이 더 인상 깊게 다가오는거겠죠.


15. jtbc 기자들이 특별출연을 했죠. 실제로 봉감독이 jtbc 뉴스를 즐겨본다고 합니다.


16. 토마토 소스가 흥건한 미트볼 딱 보자마자 뭔가 쌔한 낌새가 보여서 조마조마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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