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봤습니다. 강추합니다.

2019.08.04 15:13

Sonny 조회 수:1440

짧게 쓸게요.

1. 이 시대에 과연 청춘, 희망이란 단어는 유효한 것일까요. 섣불리 건드리다간 열정만을 강요하는 구세대의 착취프레이즈로만 변질되기 일쑤잖아요. 그럼에도 아직까지 믿을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삶을 행복하게 살려면 현실에서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무기들이니까요.

<엑시트>가 제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은 주인공의 치열한 투쟁이었던 것 같아요. 노력과 성취의 단순한 공식, 하면 된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었거든요. 하지 않으면 안된다 = 죽는다의 궁지에 몰려있으니까 정말 죽을힘을 다해 건물을 오르고 뛰어내리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형의 노력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임기응변과 해내려는 육체적 투쟁이라는 점이 순수한 흥분을 줬습니다. 달리고, 매달리고, 기어오르고, 몸을 내던지는데 막연한 희망의 불안이 끼어들 새가 없이 즉각즉각 반응하게 되니까요. (톰 크루즈가 판권을 사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었네요 ㅎㅎ)

2. 용남에게는 누나를 구하기 위한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과연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미친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암울한 취업시장을 경험해본 동세대라면 누구든지 용남의 무모함을 이해할 겁니다.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는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조건이 갖춰져있는데, 여태 자신의 존재가 무력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면, 여기서 존재가치를 실험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클라임빙 동아리 좀 해봤기로서니 스파이더맨 흉내를 저렇게 낸다고? 아뇨 그러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 세대는 푼돈벌이 말고는 취업시장에서 무력한 존재로 계속 낙인찍히고 있잖아요.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보다 자신의 재능이 적재적소에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게 더 암울한 일이니까요. 용남이 벽을 타고 줄에 매달리는 장면마다 응원과 서러움으로 좀 가슴이 벅차더라구요. 죽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원없이 펼쳐보이길 바란다고.

이 영화의 모든 클라임빙은 청년들의 생존기에 대한 은유로 작동합니다. 그 정도로 절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아둥바둥거리는 용남에게 이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요. 또 떨어졌어. 또 떨어졌어. 하지만 이제는 떨어질 수 없으니까... 떨어지면 죽으니까 절대 떨어지지말라고 그 모든 취업생들, 청년들에게 얼마나 응원을 보내는지요. 영화 말미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응원과 격려는 이 시대에 고생하는 청년 모두가 받고 싶어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청년세대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그리고 응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온 힘을 다해 소리질러요.

3. 2016년 이후로 한국사람들에게 커다란 트라우마가 남았어요.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국가적인 재난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서 <엑시트>는 개인의 생존에만 천착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가 어떻게 무책임을 저지르고 공유했는지, 이제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하는지를 분명히 강변합니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용남을 평가하고 인정하는 게 어르신들이 아니라 어린 조카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른으로서의 성장과 책임을 분명히 상기시키려는 걸 거에요. 우리는 어떤 어른인가? 우리는 "우리 모두"를 책임지고 타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가? 영화는 그에 대해 분명히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눈물 철철이거나 쓸데없이 드라마틱하지 않아요. 슬로우 모션이나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비장미를 뽐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웃픈 장면으로 용남과 의주가 어떻게 그 책임을 실천하는지 다들 확인하셨으면 좋겠어요. 모두 가슴 뜨거워지는 게 있을 거에요.

아직 못쓴 게 많네요. 아무튼 이 영화 초강추입니다. 저는 천만영화라는 단어 자체를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 <엑시트>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고, 용기가 나고, 더 성장하게 하는 영화니까요. 이렇게만 나온다면 저는 한국영화에 대한 미련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 저는 가족들이랑 가서 봤는데 이렇게 부담없이 보고 가족 모두가 감동한 경험이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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