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씨슈라의 죽음

2019.08.05 00:22

야옹씨슈라 조회 수:1217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오랜만에 이곳 게시판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낯익은 아이디가 글을 쓰고, 대충 보니 그 스타일도 크게 변함이 없어서 반갑기도 하네요..

하여튼..

저는 야옹씨슈라입니다.
슈라라는 12살 먹은 고양이의 집사였어요. 어찌나 사랑했는지 제가 야옹씨슈라로 12년을 산거나 다름이 없는게.. 전 12년전부터 아이디를 만드는 곳마다 야옹씨슈라가 됐었어요.
오랜만에 이 곳에.. 제가 주인없는 야옹씨 슈라가 됐다는 글을 쓰고 싶어요.
슈라가 아픈건 작년 크리스마스즈음이었습니다.
12살 나이가 적지 않다는걸 가끔씩은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토록 금새 마르고.. 작년 12월 며칠동안 밥통의 밥이 좀처럼 줄지 않는것을 눈치채곤 입을 벌려 먹였는데.. 이녀석이 밥을 받아먹지 않고 뱉어버리더군요... 심상치 않아 그 밤을 자는둥마는둥 하곤 다음날 아침 병원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슈라가 너무나 심각한 병에 걸린것을 알게 됐어요.
혹자는 고양이의 만성 신부전증을 사람의 치매와 비교하더군요.. 그만큼 치료보다는 유지.. 혹은 연명이 최선인 아주 지독한 병인것이지요.

고양이 신부전 환자의 과정은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느날부터 고양이가 물을 많이 먹는다. 밥을 안 먹는다.. 병원에 데려간다
만성신부전증 확진.. 크레아티닌 수치및 bun 수치를 내리게 하는 공격적인 수액 처방 후 어느정도 안정화 되면 퇴원하여... 그때부터 사람 아이 케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는 매일의 일상이 시작되는거죠.. 물론 고양이의 컨디션이 집사의 그날 하루의 행복을 좌우하는..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하루 하루예요..
만성신부전증에 걸린 고양이는 그 정도에 따라 짧게는 일이주안에.. 길게는 (집사의 노력여하 및 경제적능력에따라) 5년까지도 생존이 가능합니다.
인간의 신장은 망가진 신장이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식이요법 및 투석 및 이식까지 해야하지만.. 고양이는 그 모든 것이 사실 쉽지가 않죠.. 그래서 끝까지 약물에 의존하고.. 가장 중요한건 피하수액이라는 것을 해야해요.

피하수액은 고양이의 피부에 나트륨이 약간 섞인 액체를 직접 주사기로 주입하는것을 말합니다. 신장병에 걸린 고양이는 신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아 몸에 항상 물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인위적으로 물을 주입하는것입니다.

매일 약을 먹이고.. 신부전을 앓고 있는 고양이는 대체로 식욕이 없기에 강제로 밥을 급여하는 경우도 많으니...밥을 떠 먹여주고.. 평생 맞아나 봤지 누군가의 몸에 직접 주사기를 찔러 보는걸 처음 해 봤을 집사들이 어느새 일상처럼 그들의 고양이에게 피하수액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담을 하자면.. 저는 슈라가 병에 걸렸을 무렵 22개월이었던 젖먹이 아기와 아직까지 손이 많이 가는 6세 아이를 키우던 중이었으므로 슈라의 병간호의 무게가 참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단 하루도 슈라에게 밥이나 약 그리고 수액을 게을리 할수는 없었어요. 슈라는 아주 심각한 상태였고, 저는 그애가 없다는걸 상상할수 없었어요.. 그리고 꾸역꾸역 그 모든 것을 해내갔어요. 사실은 그 모든 시간이 길지 않다는것을 알고 있었고.. 힘들었지만.. 무서웠어요. 어느순간이 오면 저 아이가 없겠구나... 지금에서 생각하면 슈라도 제 마음을 알았을꺼 같아요.. 무거웠던 책임감... 버거운 그 모든 삶의 무게.. 슈라가 투병하던 7개월이 채 되지 않던 그 기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했어야만 했던 시간이었어요.
마지막 순간도 소리없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다가오고 있었어요.
죽기 한달전인가..6월부터는 슈라는 우리와 아침 인사를 하지 않았어요.
어린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면 멀찌감치 앉아 아이들 곁에서 노는것을 보던 것을 멈췄어요..
그렇게 멀어지고.. 점점 먹지 않고.. 힘이 없더니만..
죽기 5일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몸에 있는 어떤 것도 남기지 않겠다는듯이 토하고 싸고.... 그리고 더 이상은 먹지 않았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시켰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 밤부터 단 한순간도 눈을 감지 않고 괴로워했어요.
저는 그제서야 인정했습니다.
죽기 전날밤.. 아이가 어찌될까 잠을 자러갈수도 그렇다고 밤을 샐수도 없던 그밤... 슈라에게 언니 잠시 잘께 아침에 꼭 만나.. 인사하고 세시간이나 잤을까.. 놀래 일어나 슈라를 보니
그토록 약해진 숨으로 꼭 저를 기다려준마냥... 제가 곁을 지키며 말을 걸자.. 조금씩 생명을 놓고.. 놓고...그리고 마지막순간을 맞았습니다.
처음 슈라를 키웠을 무렵 온건히 둘이었기에 행복했던 순간처럼..그 새벽의 마지막을 온건한 둘로 보내다.. 전 혼자가 되고 말았어요.

그림자같이 말없고.. 조용했던 우리 슈라.. 평생 단 한번도 세상에 나가본적도 없는 나의 고양이 슈라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오늘밤은 어느날보다 더 보고싶고.. 품에 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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