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쳐 시리즈를 보고 나니 무언가 허전하지 않겠어요? 왕겜을 다시 보자니 너무 긴 시리즈이고, 결말도 개똥같았으니 대신 반지의 제왕을 봅니다. 실은 이 시리즈를 보기도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 보기처럼 연례행사쯤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는 않고 제가 좋아하는 장면 위주로 스킵해가면서 봐요.


1편에서 좋아하는 장면 첫번째는, 절대반지의 처분을 두고 리븐델에서 원탁회의 참가자들이 다투는 씬입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프로도가 본인이 반지 운반자가 되겠다고 나서죠. 그 장면 볼때마다 어찌나 뭉클(...) 하던지. 두번째는, 로스로리엔 숲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이 장면만큼은 확장판을 더 좋아해요. 영화적으로야 확실히 편집된 장면이 더 낫긴하지만, 갈라드리엘이 반지원정대들에게 아이템 주는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세번째는, 보로미르가 전사하는 장면입니다. 보로미르는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해서요. 죽는 장면도 잘 찍혔고. 


스타워즈 클래식에서 1편이 제일 좋은 것처럼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입니다. 2, 3편은 딱히 좋아하는 장면을 집기 어려워요. 대신 전투씬 전반이 훌륭하죠. (미드 위쳐는 전쟁씬이 아주 형편없습니다...) 다만 아쉬운 캐스팅이 하나 있어요. 미란다 오토가 에오윈과는 잘 안맞는다고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되네요. 에오윈의 강인함 대비 오토가 좀 흐릿한 인상이다 싶습니다. 


에픽 환타지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반지의제왕은 영화보고 감탄해서 원작소설까지 찾아 읽은 경우입니다. 능력치 만땅인 일반적인 영웅담에 머무는 게 아니라 호빗, 골룸 같은 별볼일 없는 이들에게 멸망 혹은 존속이라는 운명의 키가 들려있다는 설정이 좋았어요. 원정대 전원이 백인 남성이라는 시대적 한계야 있습니다만. 


*


벌새를 보면서 제 영화보는 안목이 썩었... 아니죠, 그냥 본인 테이스트에 안맞았던 거. 94년은 제게도 무척 익숙한 연도이지만 그 시절의 공기가 그립지도 않고 복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물론 영화는 응팔 시리즈와 달리 그 시절에 대한 향수어린 태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벌새를 보면서는 영화적인 척 하는 90년대 소설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은희경의 새의 선물같은 거요. 초반 50분은 지루했고, 이후에야 좀 솨솨솨 집중이 되더군요. 그러다 후반 2-30분여는 또 지루했습니다. 성수대교와 그 죽음을 포개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러닝타임이 길었고, 더 일찍 마무리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롱이냐 미디엄 샷으로 사람과 사물와 풍경을 응시하기. 이게, 영화 장르 문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제겐 익숙해서 좀 진부하게까지 느껴졌고요. 각본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가족들 묘사가 납작한 데 비해 친구들과의 에피들은 좋더군요. 아.. 근데 영화음악 활용은 약간 의아했어요. 


무엇보다, 인간적으로다가 주인공이 너.무 예뻐요. 듀게 모 유저께서 그 얼글로 뱅뱅사거리 나가면 기획사 사람들이 달라붙을 것, 이라고 표현하셨던데 진심 공감입니다. 그래서 이입이 잘 안됐어요. 학생, 외모가 범상치가 않아.... 혹은 본인이 예쁘고 그걸 또 잘 알아서 영화 속에 본인 외모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걸지도요. 중등 때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폭발할 때인데 말이죠. 여튼, 박지후 배우 연기는 좋더군요. 


김새벽 배우도 좋았네요. 그 당시 운동권 대학생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어쩜 저렇게 딱 그 타입을 집어냈을까, 싶었어요. 서울에 철문 있는 2층 양옥집,  침대방 있는 부자 집안이던데... 왜 그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을까요? 제가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했는데, 코어로 가면 또 모르죠. 학생회장하다가 수틀리면 대학원도 가고 유학도 가고... 


제일 좋았던 배우는, 1학년 후배 아이입니다. 영화 통털어 제일의 명대사도 이 배우 입에서 나왔네요. "그건 지난 학기 일이잖아요."  

어머,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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