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택근무 5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해 보니 저랑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서 갑자기 출근하라 하면 우울증 걸릴 것 같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어서 정말 편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하드웨어쪽이라 사실 재택근무가 좀 힘든데 일부 장비는 집으로 택배로 받고 개인적인 물품도 사용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제가 실험실이랑 장비 관리를 했는데 인간들이 당췌 물건을 쓰고 제 자리에 둘 줄을 모릅니다. 제가 일일이 잔소리해가며 따라다녀야 되고 하루가 멀다하고 잔소리하는 이메일이랑 잃어버린 장비 찾는 이메일 보내고...(인간들이 또 지들이 쓰고 어디다 처박아뒀는지 모르면서 나중에 저한테 물건 찾아달라고 옵니다)....그랬는데 그 스트레스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너무 너무 좋습니다. 아마 저희 팀원들도  제 잔소리 안 들어서 스트레스 풀릴 듯.. 아니 이 인간들은 제가 잔소리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애시당초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따위를 모르는 부류겠죠. 


바깥 출입도 거의 안 하는데 이것도 좋습니다. 저는 전혀 불편하거나 갑갑함을 못 느껴요. 아침마다 동네 한국인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고 이틀에 한 번 정도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게 다입니다. 술집, 레스토랑등을 제외한 물건을 파는 소매점들은 대부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쇼핑은 갈 수 있습니다. 헬쓰클럽도 영업 중지라 운동도 집에서 유튜브로 하는데 정말 편합니다. 채널이 너무 다양해서 유산소 운동, 근력운동, 요가, 필라테스 원하는 건 뭐든지 골라서 할 수 있네요. 저는 여러 개 시도해보다가 땅끄와 오드리 부부의 채널이 저한테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서 그걸로 하고 있어요. 점심먹고 30분정도 빡세게 운동하고 업무로 복귀하는 데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좋습니다. 일하는 중간 중간 고양이님과 놀아줄 수도 있고요.


* 다들 코로나 이후의 달라진 세상에 대해서 경고하는데 그게 지금부터 쭈욱 영원히라는 얘기는 아니겠죠? 앞으로 평생동안 모여서 놀지도 못하고 학교도 무조건 온라인이고 악수도 포옹도 안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고 인류 다수가 면역을 획득하는 짧으면 1년에서 길면 3년정도의 시간동안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걸 마치 모든 인류 문명의 양상이 영원히 바뀔 것 처럼 얘기하니까 너무 디스토피아적이예요.  그 보다는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변하여 지속될 것들은 산업구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사태는 지난 30년간 거침없이 폭주하던 세계화에 처음으로 제동을 건 것이기도 하죠.  특히 가장 최근의 10년은 그 폭주의 정도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가랑비에 옷젖듯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이번 사태로 그  규모와 정도를 알고 새삼 놀랐습니다. 우선 세계의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엄청난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저가항공...대체 그 규모가 얼마나 되었던 것일까요? 전 세계의 호텔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일반 주거지까지 침투해 여행객들에게 잠자리로 제공된 유사 호텔 산업, 도심의 주거지가 상업적 호텔로 변하고 정작 주민들은 살 집을 못 구해서 쫓겨나던 대도시의 상황.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행을 다녔던 것일까요? 지금은 바다의 애물단지가 된 거대한 크루즈선들을 보고 있으니 초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집니다. 직원만 1000명이 넘고 승객들까지 수천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지구 구석 구석을, 남극에서 북극까지 부지런히도 다녔더군요. 그런 배들이 한 두 척이 아니예요. 저 배들은 하수와 쓰레기 처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모두들 중국의 돈에 취해서 영혼까지 갖다 바치며 저렴한 물자를 마구마구 소비했어요. 지구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찼고요. 그래서 그렇게 저비용의 세계화로 구축된 경제 시스템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 방에 무너진 후 각 나라들은 다시 이런 일이 생길 때 대처할 방법을 찾겠죠. 특정 국가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을 수도 있고 자국에 필요 최소한의 필수품과 의료물자 생산을 위한 제조시설을 구축할 수도 있겠죠. 사실 이게 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소규모로 필요한 만큼을 지역적으로 생산해서 사용하는 것 말예요. 경제 주권을 획득하고 눈치 안 보고 할 말은 하고 살 수도 있겠죠. 프리 홍콩, 프리 티벳, 자유세계 만세!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 그 댓가가 참 뼈아플겁니다. 하지만 이미 사드 때 수업료를 지불했으니 한국도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낮춰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더불어 생산과 소비가 좀 더 고비용으로 치솟는다고 해도, 그래서 경제가 코로나 이전처럼 불붙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건 인류가 떠안아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한 세계를 원한다면요.  


그리고 기후변화 얘긴데, 태평양 가난한 섬나라의 소녀가 눈물로 호소해도 안되던 기후변화 협약, 코로나 한 방으로 그냥 반전이 가능했어요.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연의 힘이 인간의 폭주를 보다 못해 강제로 멈추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예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댓가로 치른 후에 말입니다. 


* 재외국민 투표를 일찌감치 했습니다. 원래 교민 편의를 위해서 투표소를 여러 곳에 설치하려고 했는데 주정부의 코로나 락다운 방침과 맞물려 그렇게 못했습니다. 투표 시작될 때 이미 긴급한 이유없이 외출금지령이 떨어진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영사관에서는 투표 준비를 굉장히 잘 해놨더라고요.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이 건물 1층에서부터 사회적 거리 지키기 안내와 더불어 손 소독제를 뿌려주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고 엘리베이터도 한 꺼번에 두 명 이하만 탈 수 있게 통제하고요. 투표소 들어서는 순간 체온 측정, 그리고 나올 때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주고 등등...안내하시는 분께 큰 절을 할 뻔 했습니다. 


* 이 동네는 아직도 마스크에 대해서 결론을 못내리고 갈팡질팡 하다가 미국에서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다니라는 권고가 나온 후 심각하게 고려하더니 여전히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걸로 결론. 현실성이 없어요. 왜냐하면 밖에 나가면 인종을 가리지 않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녀요. 전문가 (의사)의 인터뷰를 TV로 보는데 뭔가 앙글로 인종 특유의 오만같은 게 느껴졌어요. 내가 전문인데 내가 제일 잘 알아. 아시아 너네들이 방역을 잘하든 못하든 나보다 아는 것 없음...좀 이런 태도? 물론 우려하는 바는 이해합니다. 물량수급이죠. 모든 사람들이 의료물자를 구하려고 난리를 치면 진짜로 의사, 간호사들이 사용할 물량이 없어지니까요. 그렇다면 최소한 천 마스크라도 권장해야한다고 봅니다만 '효과 없다. 쓰지 마라'로 결론을 내리는 게 어이 없어요. 마스크는 내가 아플때 쓰는 거지 건강한 사람이 쓰면 효과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 잠깐만, 그런데 건강한 의료진은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써야 한다면서요? 아, 그건 의료진은 감염자들을 직접 접촉하니까 그들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써야 하는 거고요. 그거라고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가 감염이 되었는지, 옆에 앉은 기침도 재채기도 안하는 사람이 감염이 되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요. 누가 아픈 사람인지 모르니까 일단 마스크를 써서 불확실성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게 그렇게 어려운 논리인가요? 생각해보니 서구 사회의 이 지난한 마스크 논쟁은 모두 감기와 인플루엔자 현상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절대적 진리처럼 믿고 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증상일 때 전파력이 높다고 한국 질본이 계속해서 강조하는데도 말예요. 처음보는 바이러스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주장의 지나친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또 기침이나 재채기는 의도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해도 대화를 하면서 미세한 침방울이 튀어 이뤄지는 무증상 전파를 생각한다면 두꺼운 천 마스크만 써도 상당부분 보호가 될거라는 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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