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독립이니 민족이니 체면이니 비극이니라는 개념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지 가르쳐준 분입니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오셔서 뵈었어요.

어머니가 만든 밥 맛있게 먹고 돌아가시는 길, 자동차가 없으시기 때문에 택시 잡아 드리려고 따라 나갔거든요.

우리집이 산꼭대기라 대로까지 나가려면 2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나란히 걷기가 좀 그래서 몇 걸음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뭐 어른의 그림자를 밟지 못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묵묵하게 걸으셨고, 저도 따라서 묵묵했는데 당신의 쇠잔한 어깨에서 시선을 돌리느라 발목을 살짝 삐끗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택시를 잡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 하는 목소리를 내며 나타난 자동차가 있었어요. 감독님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는 초로의 남자분이었습니다. 대기하고 계셨나봐요.

그: "감기드신 것 같던데 어떠세요?"

감독님: 멀쩡해. 내가 어떤 놈인데 감기따위가.


초록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노라니, 이상하죠? 두 마리의 거대한 곰과 헤어진 기분이었어요. 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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