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해보이는 제목은 어그로입니다.... 논문 쓰시는 분들 고생하십쇼...


런닝맨에 나오는 이 게임은 언어적/사회적으로 흥미로운 질문거리를 던져줍니다. 일단 지석진 게임은 피디가 런닝맨 멤버 한명에게 질문을 하나씩 총 세개의 질문을 합니다.(지석진이 하도 동문서답을 많이 한다고 해서 아예 게임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서 작명되었습니다...) 그러면 멤버는 세 질문에 모두 동문서답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어제 밥 뭐먹었어?"라고 피디가 물어보면 무슨 메뉴를 먹었다거나 아직 밥을 안먹었다거나 단문으로 음식을 말하면 안됩니다. 하물며 '먹었다'는 타동사의 목적어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명사도 말해서는 안됩니다. 이를테면 "신발"이라거나 "책받침"이라는 단어조차도 완전한 동문서답은 아니라서 실패처리 됩니다. 진짜로 말도 안되고 쌩뚱맞은 대답을 해야 이 게임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어?" 라는 질문에 유재석은 일단 말이 안되는 답변으로 준비해놓은 "오동나무"를 이야기했다가 실패로 처리됩니다. 왜냐하면 의미상으로 냉장고에 오동나무가 들어있을리는 정말정말 확률이 낮고 동문서답에 가깝지만, 문장의 구조에서는 말이 일단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에서 일단 흥미로운 지점은 인간이 언어적 맥락을 자동으로 갖추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피디와 런닝맨 멤버가 순차적으로 화자와 청자의 역할을 교환한다고 해보죠. 피디가 먼저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그걸 듣고, 청자가 자동으로 화자가 구성해놓은 맥락에 자동으로 반응을 하게 됩니다. 냉장고에 뭐가 들었어?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질문에서 청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힘듭니다.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를 먼저 떠올린 다음에, 그 맥락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하려고 하죠. 코끼리를 생각하지마, 라는 질문과도 같은 효과입니다. 그래서 이 지석진 게임에서 맨 처음 성공한 하하의 방식 또한 흥미롭습니다. 그는 이미 피디가 만들어놓은 질문의 맥락에서 탈출하려는 대신 자신만의 맥락을 대신 만들고 철저히 그 맥락만을 밀고 나갑니다. 그는 자기가 만든 가난의 프레임으로 피디의 질문을 아예 소외시켜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역반응이 아니라, 아예 무반응을 넘어선 자신만의 정반응만을 계속 해야 되는거죠. 


이 게임에서 또다른 재미있는 점은 제 3의 청자들이 맥락을 만들어내고 결정하는 부분입니다. 화자인 피디와, 청자인 멤버, 그리고 게임을 하지는 않되 그걸 옆에서 듣고있는 또 다른 청자 멤버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피디가 유재석에게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은?" 이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유재석이 "오동나무"라고 대답합니다. 유재석의 입장에서 자신의 대답은 무맥락적인 것이지만 다른 멤버들이 이것은 맥락 속에 이뤄졌다고 판정합니다. 그리고 이 판정은 사실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의미상으로는 생뚱맞을 수 있어도, 문장의 구조 안에서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어떤 사물이라는 점에서 오동나무는 충분히 '말이 되는 범주'안에 포함되기 때문이죠. 물론 게임상 자기팀의 승리와 상대팀의 패배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장면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어의 맥락이 꼭 직접적인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관계 바깥에서 외부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나한테 한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이 청자로서 나에게는 이렇게 들리고 그건 이런 맥락이라는 그 주장은 충분히 유효해지면서 언어는 절대 일대일의 소통도구가 아니라 다면적으로, 다수의 사람에게 동시에 작용하는 사회적 도구인거죠.


그래서 이 게임은 한편으로는 언어가 언어 자체만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얼마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하는 개념인지, 그리고 그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흔들거나 결정지을 수 있는지 그 정치적 변용을 생각케 하기도 합니다. "오늘 먹고 싶은 것은?"이라는 질문에 송지효는 "ABC"라고 자신있게 무맥락적인 대답을 했지만 그걸 양세찬 무리는(?) 그게 초콜렛 브랜드라면서 그 안에 담긴 맥락을 새로 발굴하고 송지효의 실패를 결정지었습니다. 그러니 개인은 최대한 정확한 발화와 전달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회적인 개념의 순환을 잘 잡아내면서 동시에 정치적 변용에 휘둘리지 않을만큼의 개념적 토대를 스스로 쌓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할까요? 아니 그런 당위를 얻어내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끙...


@ 이 게임의 또 다른 재미는 가장 무맥락적이고 동문서답을 완성시키는 대답들은 바로 추상형 명사입니다. 무슨 질문이 나오든 "빨간색"이라거나 "53!"이라는 대답들은 대다수의 질문이 담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중화시켜버립니다. 수학 혹은 미술 같은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는 사회와 관계의 맥락이 구속시킬 때 도피할 수 있는 언어적 탈출구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물론 이런 대답을 반복하면 피디도 질문을 뒤집어서 "지금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이라는 질문으로 그 맥락을 역으로 추적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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