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루이 바로와 빈대떡 궁합

2021.10.03 19:41

어디로갈까 조회 수:589

어머니가 오랜만에 점심에 빈대떡을 부쳐주셨습니다. 녹두 불려 갈아서 집에서 담근 배추김치 잘게 썰어넣고 간 돼지고기 넣어 부치는 우리집 빈대떡은 이웃들이 접시들고 동냥하러 올 정도로 맛있어요. 간만에 뭘 좀 먹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장 루이 바로의 [천국의 아이들 Les Enfants du Paradis]를 봤습니다. 마르셀 카르네의 작품이죠.

난데없이 아버지가 그 영상을 띄웠어요. 우리나라에는 [인생유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는데, 삼류 극단의 애환을 그린 이 대작에서 바로는 작품 초반의 판토마임 역을 예술적으로 연기해서 전설이 되었습니다. 바로를 세상에 알린 작품으로 지금도 영화평론가들이 세계 10대 명화를 꼽을 때 언급하더군요. (우리 아버지도.)
유튜브에서 찾은 [천국의 아이들] 4분짜리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sL8V6k79lg&t=1s

오래 전, 연극배우로 출발해서 끝까지 연극배우로 살다 간 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왜 연극을 시작했는가? 라는 질문에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파트너가 돠고 싶었다. 연극은 곡마단처럼 유랑하는 것이다" 고 답한 게 기억나는군요.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이오네스코, 사뮈엘 베케트, 장 주네, 마르그리트 뒤라스, 물론 세익스피어도.  (다 제 취향이라 기억함.)
로렌스 올리비에와는 형제처럼 지냈고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3시간 넘도록 그의 연기를 보는 동안 빈대떡을 두 장이나 먹었더군요. 끝나자 아버지가 평하셨습니다. 
"저런 배우가 시인이지. 너는 시가 뭐라고 생각하냐?"
- 재능을 자신의 작업에 바친 사람만이 시인은 아니죠.  그리고 어느 한쪽이 막히면 둘 다 끝날 위험이 커요.
제 답에 삐죽이는 아버지에게 읊어드린 시 한 편.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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