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으로, 아이 자랑

2021.10.03 22:41

Kaffesaurus 조회 수:623

어느 찬양에 나 남이 가진 것 다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 가졌으니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저의 선물이를 보면서 가끔 그 가사를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듯이 저의 아이 선물이는 자폐아입니다 )

....

선물이 한 여섯살 때부터, 저와 선물이가 우리만의 일상을 가지게 된 이후, 여름이 되면 늘 헬레나를 만나러 스톡홀름에 갔습니다. 가면 하루 이틀 자고 돌아왔는데, 처음에 갔을 때 선물이는 토마스와 친구들의 토마스와 로시를 데리고 갔었지요. 사람들이 나 집을 나가는 때면 토마스랑 로시가 집을 지킨다고 했어요. 작년에는 코로나로 가지 못했고, 지난 여름에는 다들 백신을 맞았으니 만나자고 했어요. 선물이가 스톡홀름에 가면 하는 일은 좀 정해져 있습니다. 테크닉 박물관이나, 민속촌 비슷한 스칸센, 자연 박물관에서 아이맥스 영화보기. 이번에는 무엇을 할까 어른끼리 이야기 하다가, 헬레나가 선물이의 여름 방학이니 선물이한테 이번에는 무엇이 하고 싶은 지 물어보라고 했어요. 아이한테, 선물아 이번에 스톡홀름에 가면 헬레나랑 뭘 하고 싶니? 물어보자 아이는 저를 보고 이렇게 답했어요. 

헬레나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싶어. 

아이의 기대하지 않은 대답에 살짝 놀라서, 다시 한번 물어보니, 응 나 헬레나한테 저녁 사줄꺼야. 

원래 별로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라 그래? 그런데 저녁은 우리 헬레나 집에서 먹을거야, 점심을 사면 되겠네. 뭘 먹을까? 란 질문을 시작으로 좀 긴 무엇을 어느 레스토랑에서 먹을 것인가에 대한 negotiation을 가졌지요. 그렇게 준비한 것에 비하면 정말 심드렁하게, 헬레나가 아주 기분 좋게, 선물아 나 점심 사주어서 고마워, 잘 먹을께란 말에 반응은 응이 끝입니다. 그냥 당연한거니까요. 그리고 본인은 이미 즐기고 있으니까요.  


며칠 전에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린 카로네 집 방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늘 케익을 구워가는데 이번에는 한 한달 전부터 선물이가 계획했어요. 한번은 카로한테 전화해서, 카로 엄마랑 내가 케익구울거에요, 그런데 사실은 내가 굽는 거에요 라고 하더군요. 초콜렛 케익 빵에 화이트 초컬릿, 블루베리 무스 케익은 만들었습니다. 심각하게 고른 초컬릿과 마시펀 장미로 꾸미고요. 마음에 정말 들었던 건지 아이는 카로에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케익을 만들었어요, 라고 자랑했고, 카로는 선물아 이건 내가 받은 제일 멋진 케익이야 라고 받아 주었죠. (그런데 정말 예뻤어요). 


돌아오는 길에 카로에게 빨리 인사하고 벌써 어디로 사라진 선물이, 울로프가 차에 가 있을 거야 했던 대로 차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왜 그렇게 빨리 가버렸냐고 묻자 아이는 답했습니다. 말한테 간다고 인사하느라고요. 엄마는 말한테 인사했어요? 


......

아이의 진학상담을 합니다. 다음해이면 중학생이 되고 더 힘들게 되겠죠. 남들이 가진 많은 것을 쉽게 가지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참 행복한 마음이 있습니다. 늘 그마음을 간직하기를 기도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8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4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30
126091 생산성, 걸스로봇, 모스리님 댓글을 읽고 느낀 감상 [20] 겨자 2018.10.24 471015
126090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 - 장정일 [8] DJUNA 2015.03.12 269807
126089 코난 오브라이언이 좋을 때 읽으면 더 좋아지는 포스팅. [21] lonegunman 2014.07.20 189492
126088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의 글 ㅡ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 결코 아니다' [5] smiles 2011.08.22 158052
126087 남자 브라질리언 왁싱 제모 후기 [19] 감자쥬스 2012.07.31 147376
126086 [듀나인] 남성 마사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9] 익명7 2011.02.03 106110
126085 이것은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1] 책들의풍경 2015.03.12 89307
126084 2018 Producers Guild Awards Winners [1] 조성용 2018.01.21 76265
126083 골든타임 작가의 이성민 디스. [38] 자본주의의돼지 2012.11.13 72970
126082 [공지] 개편관련 설문조사(1) 에 참여 바랍니다. (종료) [20] 룽게 2014.08.03 71721
126081 [공지] 게시판 문제 신고 게시물 [58] DJUNA 2013.06.05 69113
126080 [듀9] 이 여성분의 가방은 뭐죠? ;; [9] 그러므로 2011.03.21 68481
126079 [공지] 벌점 누적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45] DJUNA 2014.08.01 62753
126078 고현정씨 시집살이 사진... [13] 재생불가 2010.10.20 62417
126077 [19금] 정사신 예쁜 영화 추천부탁드려요.. [34] 닉네임고민중 2011.06.21 53616
126076 스펠링으로 치는 장난, 말장난 등을 영어로 뭐라고 하면 되나요? [6] nishi 2010.06.25 50800
126075 염정아가 노출을 안 하는 이유 [15] 감자쥬스 2011.05.29 49807
126074 요즘 들은 노래(에스파, 스펙터, 개인적 추천) [1] 예상수 2021.10.06 49784
126073 [공지] 자코 반 도마엘 연출 [키스 앤 크라이] 듀나 게시판 회원 20% 할인 (3/6-9, LG아트센터) 동영상 추가. [1] DJUNA 2014.02.12 494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