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7 19:24
Happy Go Lucky, 2008
마이크 리 감독이 '세상의 모든 계절' 직전에 만든 작품입니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포피는 항상 즐겁습니다. 오랜 지기이기도 한 룸메이트가 있고, 주말을 함께 불태울 미혼 친구들이 있고, 성실한 초등교사이며, 퇴근 후엔 운동이나 플라멩코 같은 취미활동도 열심이며, 영화가 후반에 이르면 괜찮은 남친까지 생길 판이니(헉헉 나열만으로도 숨가쁘네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위에 올린 두 사진의 표정이 특별히 웃긴 일이 있어 웃는 것이 아니고 그냥 기본 표정입니다. '행복하게 지내세요!, 즐겁게 살아요!' 이런 말을 하는 중인 거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아울러 남과 행복을 나누기 위해 언제나 노력 중인데, 그런데.....보다보면 선을 넘습니다. 이 인물? 세로토닌의 이상 작용이 의심되네, 싶은 것입니다. 자신이 행복한 건 행복하라지만 자신과 접촉하는 남까지 행복해야 하나요? 그게 가능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사실 조금은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거나 칭찬을 해 준다면 상대의 마음이 즐거워질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포피 친구인 내가 술이 고파, 그런데 포피가 술 한 잔 사주며 이야기도 들어 주고 맞장구도 쳐 준다, 이런 경우엔 포피 덕에 행복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포피와 초면인 서점 주인일 뿐인데 내가 쓰고 있는 모자가 잘 어울린다고 하고 내가 말 없이 있다고 '기분 나쁜 일 있냐, 나 때문이냐(!), 오늘 하루 즐겁게 지내자' 이런 말 하면 이상할까요 안 이상할까요. 정말 극단적인 건 야밤에 인적 없는 골목길을 산책하다가 공사판 같은 곳에서 혼잣말하는 건장한 노숙자를 보게 되는데 이 사람에게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말을 건다는 겁니다. 관객인 저는 이 영화가 이런 장르가 아닌데 하면서도 조마조마했습니다. 제가 위에 세로토닌의 이상 작용이라고 표현했지만 포피는 확실히 우리가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 사이에 그어진 수많은 선들, 어디서 만났고 얼마 동안 만났고 어느 정도 깊은 사이인지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굵기로 그어져 있는 수 많은 선들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포피라는 인물의 본성이 그런 것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타인과 사이의 거리감을 측정하는 기관이 고장난 듯 행동한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세상과 트러블이 발생하게 됩니다. 주행운전 교습을 해주는 기사가 차별주의자이자 음모론자인데 포피의 모든 것을 자기식으로 곡해해 받아들여 큰 갈등이 생깁니다. 영화는 포피의 일상 속에 네 번 정도의 운전교습 장면을 드문드문 끼워넣어 긴장을 쌓아 나갑니다. 포피 같은 사람이 자신을 잘 아는 주변인들 외의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볼 수 있으며 포피 스스로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는 것에 대한 중간 점검(?)의 계기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계절'과의 유사함이 느껴졌습니다. '선을 넘는다.' 라는 점이오. 이 시기에 감독의 관심사였는지 모르겠지만 두 작품에서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나서의 씁쓸함, 개인적으로 느꼈던 약간의 불쾌함이 이 영화에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 있을까. 물론 포피가 현실 인물이면 저는 가까이 사귀지 않습니다. 피곤할 것이라 여겨 피할 것이고 저나름 삐뚫어진 점이 있어서 괜히 아니꼽게 여길 것이니까요. 하지만 두 시간 정도의 영화 속 이 인물은 웃음을 전염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따라 미소짓고 있게 됩니다. 샐리 호킨스가 웃는 표정을 기본으로 해서 온갖 익살맞은 표정 연기를 하는데 웃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계절'이 뭔가 닫힌 세계였다면 포피의 세계는 열린 세계 같습니다. 결혼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가정이라는 '울타리'라고 우리가 표현하는데 과연 울타리쳐지지 않은 여유와, 현실을 멀찍이 놓고 살 수 있는 기상이 있었습니다.
샐리 호킨스의 다양한 표정 연기 진수성찬입니다.
2022.01.07 19:38
2022.01.07 20:30
매력적이고 정말 좋은 연기자입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 진가를 완전 느꼈어요.ㅎㅎ
마이크 리 감독작은 실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찾아 보니 이분도 이제 여든이네요. '베라 드레이크'를 언젠가 보고 싶네요.
2022.01.07 21:22
2022.01.07 23:21
재밌어요. 보세요!
2022.01.07 23:07
이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2022.01.07 23:21
저는 왓챠에서 봤어요.
2022.01.07 23:41
선 넘는 것 하면 우리 '기생충'의 송강호 아버님께서... ㅋㅋㅋ
옛날에 제목만 들었을 땐 완전 블링블링하고 희망찬 코미디 영화겠구나! 했었고 최근에 듀게에서 이 영화 언급을 보기 전까지도 계속 그렇게 믿고 있었죠. 보면 재밌게 볼 텐데 선뜻 손이 안 가는 영화... 입니다.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나니 더 그래요. ㅋ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2022.01.08 00:07
'기생충' 오래 전 영화도 아닌데 많이 까먹었어요. 최근엔 영화를 본들 이렇게 기억에 남는 게 없으니 보는 시간 동안 최고 만족스러운 영화가 최고다 싶어요. 화면이나 음악이 아름답다든가, 신나는 감정, 행복감을 준다든가. 이 영화는 웃음의 감염력이 있었습니다.^^
2022.01.08 19:31
2022.01.08 20:06
말씀 듣고 생각해 보니 '이야기'라는 게 선을 넘기에 성립되는 것 아닌가 싶네요. 특히 범죄나 스릴러, 호러 등은.
2022.01.08 23:50
저 두 영화는 선을 넘다 못 해 살인까지 저지르죠. 고립된 존재가 타인에게 영향력을 휘두드려다 목숨까지 빼앗음. 세인트 모드는 가해자, 줄리아의 눈은 피해자 시점이란 게 달라요.범죄,스릴러, 호러 등이 그렇죠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 DJUNA | 2023.04.01 | 26275 |
공지 |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 엔시블 | 2019.12.31 | 44885 |
공지 |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 DJUNA | 2013.01.31 | 353836 |
126202 | 게시판 이제 되네요. [10] | poem II | 2012.06.26 | 17353 |
126201 | 나이별 경기도지사 지지율 [1] | 그림니르 | 2010.06.02 | 12796 |
126200 | 경기도민, 오늘 투표하고 왔어요.. [2] | 화기치상 | 2010.06.02 | 10434 |
126199 | 방송3사 출구조사는 감격, YTN 출구조사는 불안 [2] | Carb | 2010.06.02 | 10111 |
126198 | 경남 도지사 초박빙 | alan | 2010.06.02 | 9319 |
126197 | [불판]개표방송 [13] | 20100602 | 2010.06.02 | 9165 |
126196 | 구로구, '오세훈' 기표된 투표용지 배부...-_- [7] | look | 2010.06.02 | 10810 |
126195 | 근데 왜 비회원도 글 쓰게 하셨죠? [2] | 비회원 | 2010.06.02 | 9476 |
126194 | 결코 인간편이 아닌 스티브 잡스,.. [7] | 자연의아이들 | 2010.06.02 | 10654 |
126193 | 파이어폭스로 잘 되네요 [4] | anth | 2010.06.02 | 7379 |
126192 | 유시민이 이기는 이유.jpg [7] | 그림니르 | 2010.06.02 | 12563 |
126191 | 개표방송 보는데 떨려요. | digool | 2010.06.02 | 6479 |
126190 | [서울]한명숙 1% [22] | 스위트피 | 2010.06.02 | 9578 |
126189 | 절호의 찬스! [1] | 얏호 | 2010.06.02 | 5982 |
126188 | 옛날 종교재판이 판치던 시대 과학자들의 심정을 [1] | troispoint | 2010.06.02 | 6693 |
126187 | 노회찬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 [8] | 그림니르 | 2010.06.02 | 8844 |
126186 | 현재 무소속 후보의 득표율은 어떻게 되나요.. [1] | 장외인간 | 2010.06.02 | 5815 |
126185 | 잘가라_전의경.jpg [5] | 댓글돌이 | 2010.06.02 | 9026 |
126184 | 계란 요리 드실 때, 알끈도 드시나요?? [14] | 한여름밤의 동화 | 2010.06.02 | 8704 |
126183 | 좀 의아스러운게.. [5] | 장외인간 | 2010.06.02 | 7052 |
샐리 호킨스라는 보석같은 배우를 전세계에 알려준 너무 고마운 작품이죠. 마이크 리 감독님 작품들 다 좋아하지만 그래서 이걸 특히 더 애정해요 ㅋㅋ 약간 페이버릿 이후에 월드스타가 된 올리비아 콜먼하고 비슷한 루트 같아요. 자국내에서만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영드 매니아 아니면 모르던 숨겨진 고수(?)
포피는 관객 입장에서 처음에는 과거 성장과정에서 분명 뭔가 있었을거란 생각이 드는데 영화에서 전혀 설명을 안하죠. 듀나님 리뷰에서도 언급되지만 자전거 도둑맞자마자 바로 튀어나오는 본능적인 말이 "작별인사도 못했는데~"라면 그냥 이렇게 타고난 인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어떤 의미에선 참 존경스럽고 같이 사는 룸메이트 절친처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고 어느정도 적응도 되어있다면 충분히 나의 삶도 즐겁게 해줄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위험부담이 너무 많은 것도 맞아요. 언급하신 노숙자도 그렇고 다행히 잘 넘어갔지만 그 운전강사 같은 인셀이 저기서 조금만 더 막나가면 지 혼자 착각해서 어떤 일들을 저지르는지 너무 많이 보고듣는 요즘은 더욱 그렇네요.